"여자로서 튀어 오르는 불꽃만 봐도 겁이 나는데, 직접 철판을 자르고 붙이는 용접을 해보니 새삼 현장 생산 근로자들의 어려움을 직접 느낄 수 있었습니다."(현대중공업 신입사원 김민정·26) "아침 5시부터 저녁 7시까지 3박4일간 하루 40㎞씩 행군을 하느라 동료들이 지쳐 하나 둘 쓰러지면, 배낭을 메주고 그래도 안될 경우 들것에 뉘여 함께 목적지를 향하다 보니 어느새 '하나'가 되었더군요."(한화유통 신입사원 김한경·29)요즘 '바늘구멍'이라는 취업문을 당당히 뚫은 새내기들은 합격의 기쁨도 잠시, 제대로 된 조직원이 되기 위한 고난의 관문들을 통과해야 한다. 짧게는 1개월에서 2개월 가량 시행되는 신입사원 연수가 그것. 기업들의 올해 연수는 과거의 천편일률적인 회사소개나 업무파악 등 책상물림식과는 판이하다는 평이다.
내실과 경험을 중시하고, 상식을 파괴하는 이색 교육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직접 체험을 통한 현장교육에서부터 상당한 정신적, 육체적 인내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한 두 달 시간만 보내기만 하면 되겠지"라는 안이한 생각으로 연수에 임한 새내기들은 꽉 짜여진 스케줄과 상상도 못한 교육프로그램에 곤혹을 치루기도 한다.
이론교육도 과거와 천양지차다. 사사(社史)에서부터 업무 전반에 대한 교육을 딱딱한 강의로 때우는 경우는 거의 없다. 현대중공업은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일대기를 연극으로 발표케 하는 '연극제'와 함께 팀별로 신문을 제작하도록 하고 있다. 삼성그룹은 고 이병철 회장 등 삼성 경영진의 역할극인 '드라마 삼성'을 통해 삼성의 역사와 경영철학을 익히게 한다. 재미를 느끼면서 자연스럽게 새내기들이 기업 문화를 익히게 하자는 의도를 담고 있다.
현장교육은 새내기들의 상상을 뛰어 넘는 이색적이고 톡톡 튀는 프로그램으로 가득 차 있다. 극기훈련은 웬만한 회사들이 실시하고 있는 비교적 보편적인 교육훈련이지만 이도 회사들마다 자사들의 특성을 가미, 새로운 훈련방법을 선보였다.
한화는 공장이 있는 인천-아산-천안-평택-용인에 이르는 140㎞코스에서 남녀 신입사원 110명을 대상으로 3박4일 동안의 '지옥행군'을 실시했다.
하루 12시간 걷느라 새내기들은 발에 물집이 잡히고, 쓰러지는 경우가 다반사였으나 결국 전원이 완주했다. 대우건설은 자정부터 오전 11시까지 36.4㎞의 산악코스를 완주하는 야간산악행군을, 기업은행은 인간이 가장 공포감을 느낀다는 11m 높이에서의 낙하가 포함된 유격훈련을 시행했다.
회사의 생산현장의 시설을 활용, 극기의 효과와 생산 근로자들의 어려움을 함께 전달하는 교육들도 등장했다.
KTF는 신입사원 61명을 강원도 원주의 50m 높이 기지국 철탑에 오르게 했으며, SK(주)는 울산정유공장의 핵심 설비인 중질유분해공장(70m), 상압증류탑(40m), 원유저장탱크(22m)를 등정하는 교육을 추가했다. 현대중공업은 조선소에서 철판 용접교육을, 포스코는 제철소 현장순환 실무 교육을 시행했다. 이 같은 프로그램은 극기와 회사 시설을 파악하는 일거양득의 효과가 기대된다.
사회봉사 교육은 연수교육의 단골 메뉴. 현대중공업은 음성꽃동네를 방문, 1박2일 장애인들을 목욕시키고, 식사를 도왔고, 삼성그룹은 강원 원주시의 자활 노숙자들의 쉼터인 '원주밥상공동체'의 어려운 이웃들에 대한 연탄배달을 도왔다. 현대모비스도 경기도 가평꽃동네에서 설거지, 대소변 치우기, 목욕돕기 등을 통해 이웃사랑 정신을 체험했다.
이밖에도 독특한 프로그램이 도입됐다. 샘표식품은 남녀 신입사원들에게 '직원요리교육'을 시행했고, 노틸러스 효성은 남녀 신입사원과 임원이 찜질방에서 대면식을 가진 뒤 용인 도자기연수원에서 도자기를 손수 제작케 했다. CJ그룹은 신입사원들이 직접 연구·개발한 음식을 경영진에게 평가 받는 '지식박람회'를 열었고, 한진해운은 7월 남녀 신입사원들이 컨테이너선을 타고 중국, 일본 등을 둘러보는 동북아 물류현장 체험행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MBC 신입사원들은 자사 제작 드라마 현장을 방문,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한진해운 권석훈 부장은 "신입사원 연수교육은 신세대의 특성을 고려,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느끼고 조직원으로서의 기본 자세를 배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혁범기자 hb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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