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임 대화 빛 감성 유연성 단순함 흥미 관용 다원성 쉬움 편안함….” 이탈리아 최대의 플라스틱 가구 회사 카르텔(Kartell)이 2003년 밀라노 가 구박람회 출품작 주제로 내세운 단어들이다. 4월9일부터 14일까지 열린 ‘ 제42회 밀라노 국제 가구박람회(Salone Internazionale del Mobile)’는 아크릴과 유리 같은 신소재를 사용한 재미있고 가벼운 디자인의 강세를 보 여줬다. 좌식 생활을 연상하게 하는 낮은 동양풍 가구와, 아동용 가구에만 사용되던 밝은 연두색이 눈에 띄게 늘었다는 것도 놓칠 수 없는 특징이었 다. 자재 중심의 독일 쾰른 박람회나 클래식 가구 위주로 진행되는 스페인 발 렌시아 가구전과 달리 밀라노 가구박람회는 철저한 디자인 중심 행사다. 올해도 이탈리아 회사를 중심으로 한 67개국 2160개 가구업체가 참가했으 며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20여만명의 관람객들이 19만㎡에 달하는 박람회 장을 찾아 ‘세계 가구디자인의 메카’라는 위상이 재확인됐다.한편 박람회 기간중 수여하는 '젊은 디자이너상' 수상자 30명중 밀라노에서 유학중인 가구 디자이너 강신우씨가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아크릴&유리, 디자인은 재미있게
환경 오염으로 나무가 귀해지면서 이번 박람회에선 아크릴과 유리 소재 가구가 많이 선보였다. 다양한 색상을 입힌 반투명 아크릴과 유리 소재로 된 가구는 집안에 밝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더할 뿐 아니라 야외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이번 박람회에서도 소품에서 침대까지, 투명한 유리와 아크릴을 사용한 가구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떠올랐다. 관람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현대 가구관 1층 정가운데 가장 큰 부스를 설치한 카르텔이나 종합 가구·소품 회사 마기스(Magis)는 플라스틱과 아크릴을 사용한 통통 튀는 디자인을 선보였다.
미니멀리즘과 상반되는 과장된 디자인도 플라스틱·아크릴 가구의 특징. 마기스사 디자이너 스테파노 카스치아니(Stefano Casciani)씨는 "디자인이 다양화하면서 이제 웬만한 디자인으로는 눈길을 끌기 어렵게 됐다"며 "아크릴과 플라스틱은 원목에 비해 원하는 색상과 모양을 쉽게 표현할 수 있어 디자이너들의 창의력을 자극한다"고 말했다.
또 이번 박람회는 세면대에서 붙박이장까지 유리가 사용되지 못할 곳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며 다양한 유리 소재 디자인을 선보여 호기심을 자극했다.
연두색, 새로운 강자로 두각
정열적인 이탈리아 디자이너들이 가장 선호하는 색상은 강렬한 빨강색. 하지만 이번에 새롭게 대두된 연두색의 강세에 미치지는 못했다. 에이스침대 마케팅팀 라종도 팀장은 "작년까지만 해도 연두색은 아동용 가구에 한정된 색상이었다"며 "오랫동안 유행한 붉은색에 지루함을 느낀 디자이너들이 이와 완전히 반대되는 연두색으로 눈길을 돌리며 새로운 색상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선언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연두색과 가장 잘 어울리는 색상은 흰색. 많은 가구회사들은 흰색 가구와 어우러지는 연두색 벽지를 선보여 박람회장에 상큼함을 더했다. 앞선 디자인으로 정평이 난 자노타(Zanotta)사는 다양한 톤의 연두색으로 구성된 현대적 카펫을 흰 가죽 의자 및 조명과 함께 시원하게 연출해 호평을 받았다.
흰색과 연두색의 매치가 가장 무난한 코디법이었다면, 메탈과 함께해 모던한 느낌을 주거나 짙은 원목에 포인트 컬러로 연두색을 사용한 전시도 눈길을 끌었다.
침대·소파는 매우 낮아져
가구 디자인도 패션과 마찬가지로 몇 년을 주기로 돌고 도는 것이 보통이다. 로맨틱과 미니멀리즘을 오가던 가구는 최근 동양적인 흐름을 띄기 시작했다. 기존의 동양풍 디자인이 검정과 흰색을 사용한 젠(zen) 스타일 색상에 한정됐다면 이번엔 동양의 좌식 생활을 모방한 낮고 넓은 침대와 소파가 대거 출시됐다.
가구 디자이너 강신우씨는 "서양인은 실내에서도 신발을 신고 생활하기 때문에 소파나 침대의 높이가 우리나라보다 20∼30㎝ 높은 것이 보통이었다"며 "올해 선보인 제품은 거의 바닥에 붙는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낮아진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레마(Lema)나 미수라 엠메(Misura Emme) 같은 브랜드는 다리를 아예 없애고 매트리스를 하나만 깔거나 일본의 다다미를 연상케 하는 딱딱한 침대에 수납기능을 보강한 간결하면서도 실용적인 디자인을 내놓았다. 침대 재질도 나무에 광택을 씌운 '하이 그로시(high glossy)'나 두꺼운 가죽을 응용하는 등 원목에 한정되지 않은 다양한 소재를 사용해 이국적인 느낌을 더했다.
/밀라노=김신영기자 ddalg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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