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행보다 더 무서운 죄악은 없습니다. 개혁을 통한 자기변혁만이 사법부가 발전하는 길입니다."지난 2월 취임사에서 창조적 개혁을 역설한 김동건(57) 서울지법원장의 행보가 법원 내부의 활발한 사법개혁 논의와 맞물려 주목 받고 있다.
취임식에서 후배들과 강당에 나란히 앉아 권위의식을 없애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였고, 관할지원을 순시하면서도 형식적인 단체사진 촬영을 생략했다. 법관들에게 '변호사와 골프를 치지 말아달라'고 당부하고, 최근에는 '장기 미제 사건에 있어서 재판 진행을 좀 더 빨리 해야 한다'고 주문, 법조계의 공감을 얻었다.
서울지법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일련의 활동에 대해 "법원 내부의 개혁 움직임을 수렴할 뿐"이라며 "외부 인사가 절반 이상 포함된 '법관인사제도 개혁위원회'의 활동을 지켜봐 달라"고 강조했다.
의견을 수렴할 뿐이라고 하지만 최근 "법관들이 선고건수를 실적으로 여겨 쉬운 사건을 먼저 처리하고 정치적으로 민감하거나 중요한 사건에 대해 판단이 늦어지는 폐해가 있다"는 지적에서 그의 문제의식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정치 사건을 염두에 둔 말로 해석하면 틀리지 않다"며 "사법부의 공정성을 의심하는 국민 중 상당수가 정치인에 대해 속절없이 길어지는 재판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민사 부문에 있어서도 몇 년씩 걸리는 주요 소송 들을 신속하고 깔끔하게 처리하기 위해서 '법관의 전문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금 법관들은 '모든 분야에 대해 조금씩 아는 것(something of everything)'을 중요시 합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특정분야에 대해 모든 것을 아는(everything of something)' 법관 양성이 절실합니다." 7∼8년 동안 훈련을 받은 법관이 민사와 형사로 나뉘어 평생 전문 분야의 재판을 맡는 일본처럼 우리 사법부도 심리의 연속성과 전문성을 보장할 '전문 재판부'를 확대해야 한다는 것.
그는 이러한 논의들이 법원 시스템과 법관 인사 개혁이라는 현안과 맞물릴 수 밖에 없음을 잘 알고 있다. 지난 달 13명의 전체 위원 중 외부인사 7명을 포함한 파격적인 구성원으로 출범한 '법관인사제도 개선위원회'를 법원 개혁을 이끌 원동력으로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위원회가 올해 말까지 논의할 사항은 대법관 제청대상자 선정 절차, 법관 근무 평정의 객관성과 공정성 확보 방안, 고등법원 부장판사 선발방법의 기준과 절차 등을 망라하고 있다.
김 법원장은 "국민들로부터 법관들의 공정성과 청렴성을 의심 받을 때 가슴이 아프다"며 "국선변호사제와 소송비용의 국고지원 등을 확대하는 한편 열심히 재판하는 모습으로 법원에 대한 믿음을 하나씩 회복해 가는 방법 밖에 없다"고 말했다.
법정에서 만나더라도 나름의 확신과 철학을 가진 '사상범'에 대해서는 존중한다는 그는 스스로 "엄한 처벌(무기징역)을 내렸다"고 인정한 1991년 사노맹 사건의 박노해씨 재판을 맡은 인연으로 박씨와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서로가 인간적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라는 그는 박씨가 운영하는 나눔문화네트워크에도 회원으로 가입했다.
/글·이진희기자 river@hk.co.kr 사진·오대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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