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흥망'으로 유명한 역사학자 폴 케네디(사진) 예일대 역사학과 교수가 "이라크와 중동 전체를 경략하려는 미국의 기도는 낭만적인 환상일 뿐"이라고 지적했다.그는 20일 워싱턴 포스트에 보낸 기고문 '위태로운 제국'(The Perils of Empire·www.washingtonpost.com)에서 "미국은 20세기 초 중동을 침략했다 실패한 영국의 선례에서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다음은 기고문 요약.
지금으로부터 86년 전 또 다른 침략군이 막 바그다드에 입성했다. 다른 사단들은 팔레스타인을 점령했다. 영국군은 곧 다마스쿠스로 진군할 마당이었다. 이란과 걸프 연안 국가들에 대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사우디 아라비아와 요르단에서는 정권 교체를 촉진할 시점이었다. 영국인들은 "독재자들이 제거되면 아랍 전체가 옛 명성과 위대함을 되찾고 전세계에 축복이 내려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탁월한 역사학자 엘리자베스 먼로는 이제는 고전이 된 저서 '중동에서의 영국의 순간'에서 "영국이 지배한 시기는 4,000년 역사의 중동에서 한 순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제 중동에 미국의 순간이 도래했다. 1차 대전을 계기로 중동에 진출하려던 영국 제국주의 지식인들은 오늘날 미국의 신보수주의자들과 닮았다. 팽창 정책을 옹호하는 논거조차 유사하다.
하지만 다들 아시는 대로 이 모든 것은 낭만적 환상임이 드러났다. 영국이 군사적으로 승리한 이후 몇 년 동안은 비교적 쉬웠다. 그러나 조류가 바뀌었다. 이라크에서는 부족 지도자들간 다툼이 치열해졌다. 쿠르드족은 들끓었고, 수니파와 시아파는 해묵은 갈등을 키웠다. 아랍인과 유대계 시온주의자들의 군사적 충돌은 점증했다. 민족주의자와 반(反)서방 지식인들도 세를 키웠다.
먼로 저서의 후반부를 차지하는 '다양한 중동의 저항' '영국의 몰락' '무능의 세월' 등과 같은 소제목은 이를 잘 보여준다.
미국인들이 더 잘할 수 있을까? 그럴지 모른다. 그러나 여건은 좋지 않다. 수니파와 시아파의 반목이 여전하고, 쿠르드족 등은 독립할 기회만 엿보고 있다. 현지 언론과 종교지도자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고 있으며, 거리에는 청년 실업자들이 넘쳐난다.
중동에 '민주주의'를 심는다는 것이 단순히 1인 1표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다수가 소수를 학대하는 체제를 만들어내기 십상이다. 1920년대 영국 행정가가 살아 돌아온다면 지금 상황과 너무도 유사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역사가 언제나 똑같이 반복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역사를 무시하면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돼 있다. 미국은 입맛대로 아랍권을 재편하는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잠시 멈추고 영국의 선례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미국 스스로도 민주화를 내세우며 쿠바와 필리핀을 접수했지만 성공적이지 못했다. 이라크나 시리아, 사우디에서는 더 잘 할 것이라고 생각할 근거는 없지 않은가?
/정리=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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