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후반의 기혼 여성이 소화불량으로 찾아 왔다. 배가 더부룩하고 불편한 증상이 6개월 이상 되었다고 했다. 체중이 빠졌을 거라고 주장했는데 그 자리에서 재보니 별로 빠진 것은 아니었다. 나이가 젊어서 암은 아닐 것이라고 판단됐지만 환자가 정밀 검사를 통해 확실하게 진단을 붙이고 싶다고 해 내시경검사를 하게 됐다. 내시경 결과는 예상했던대로 가벼운 염증에 불과했다. 이런 정도라면 증상을 일으킬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되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다시 물어보기 시작했다. 식사는 규칙적으로 하는지, 너무 맵거나 짜게 먹지는 않는지, 담배는 피는지. 그러나 별다른 증상이 없었다. 이런 경우 가장 의심되는 것은 스트레스이다.혹시 스트레스 받는 것 없느냐고 물으니 갑자기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스트레스야 많죠."
"어떤 스트레스가 가장 큽니까?"
"시아버지하고 조금 안 좋아요."
"같이 사나요?"
"아니오."
"그럼 자주 만나는 모양이죠?"
"매주 일요일마다 만나요."
"매주 시댁을 방문할 필요가 있나요? 놀랍네요."
"시아버지가 목사세요. 그래서 교회에서 매주 뵈요."
내용인즉, 1년 전 소개로 만나 결혼하게 되었는데, 시아버지는 주일에는 당연히 당신 교회로 와야 한다고 요구했다. 신부도 원래 교회에 다녔기 때문에 교회에 가는 것은 문제 없었는데 교회 분위기가 워낙 달랐다. 신부가 다니던 교회는 역사도 꽤 깊고, 사회참여가 활발했던 소위 말하는 진보적인 교회였다. 신부는 학생 때부터 사회운동에도 관심이 깊었고, 친정 식구들도 그런 분위기였기 때문에 그 교회의 분위기에 아주 익숙한 상태였다.
그러나 시아버지가 시무하는 교회는 교인들도 자기와 맞지 않았고, 시아버지의 설교도 고리타분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 정도가 아니었다. 더 큰 재앙은 시아버지가 가족은 다른 교인들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며 일요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교회에서 봉사하라고 요구하시는 것이었다. 남편은 이런 일에 대해 미안해 했지만 반대할 힘은 없었다. 그 뒤부터 신부는 토요일부터 끙끙 앓기 시작했다. 이제 그녀에게 주일은 안식일이 아니라 오로지 고통의 날일 뿐이었다.
여기까지 얘기하던 환자는 갑자기 말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손을 부채처럼 부치면서 마치 열난 사람처럼 행동했다. 감정이 고조되었구나 생각했는데, 잠시 후 놀랍게도 얼굴과 목에 두드러기가 붉게 돋아나기 시작했다. 나도 말로만 듣던 스트레스에 의해 발생하는 급성 두드러기였다. 두드러기를 일으키는 흔한 원인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약물이나 음식물이지만, 이렇게 스트레스를 강렬하게 받아도 발생할 수 있다. 의사는 이런 경우에 급성 두드러기야 해결할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할 수 없다. "참 힘드시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고작일 뿐이다.
신혼 초 신혼 부부가 양가 집안 어른들과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어느 한쪽이 일방적인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고통을 불러온다. 때로는 집안의 문제가 원인이 되어 부부 관계를 파탄으로 이끄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원만한 결혼이란 두 남녀의 결합은 물론이지만, 시댁이나 친정과의 적절한 관계 설정까지도 포함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상대방에 대한 속깊은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은 더 강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서울백병원 가정의학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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