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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벼락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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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벼락부자

입력
2003.04.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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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몰래 미국행 항공기 1등석을 예약하고, 적금증권 같은 금융자산을 정리해 최대한 현금을 확보한다. 동료와 친척, 친한 친구들에게도 절대 비밀에 부치고, 비행기 시간에 맞추어 은행에 나가 당첨금을 타자마자 대기시켜 둔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달린다. 공항 체류시간을 최소화 하기 위한 배려도 잊지 않는다. 그렇게 출국에 성공한 뒤에 부동산이나 퇴직금 같은 재산 처분을 생각해도 늦지 않는다…. 로또복권 광풍이 거셀 때 시정 술집에서 꽃피던 농담이다.■ 그 우스갯 소리가 현실이 되었다. 국내 복권사상 최고 당첨금(407억원)의 주인공인 경찰관이 돈을 탄 다음날 잠적했다. 다니던 경찰서에 사표를 내면서 상사에게 "좋은 일자리가 생겼다"고 말했지만, 친한 동료들에게는 당첨사실을 고백했다 한다.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떠났다는 소문도 있고, 서울의 아파트에서 산다는 말도 있다. 부인도 직장을 그만두었고, 집도 잠겨있다 하니 이민설, 이사설이 그럴싸하게 들린다. 돈벼락 맞은 사람의 괴로움을 짐작할만 한 단서다.

■ 하루아침에 거부가 된 것은 축하할 일이지만, 그런 사람들의 뒤가 좋지않은 게 걱정이다. 10년 전 1,800만달러(234억원)짜리 복권에 당첨됐던 재미동포 이옥자씨는 8년 만에 파산하고 말았다. 대학에 도서관을 지어주고 장학재단에 거액을 기부하는가 하면, 유력 정치인들에게 후원금도 많이 내 손 큰 자선사업가로 이름을 날렸다. 거기에 지나친 낭비와 투자실패가 겹쳐 얼마 못 가 빚쟁이 신세가 되더니, 180만달러짜리 집마저 차압 당하고 친구집을 떠도는 신세가 되었다.

■ 1988년 2,000만달러짜리 복권에 당첨된 미국인 청년도 11년 만에 500만달러의 빚을 지고 파산했다. 자동차 수리공이었던 청년은 자신의 직장이었던 자동차 판매회사를 사들였으나, 방만한 경영으로 1년도 못 가 문을 닫았다. 아내도 직장을 그만두고 돈 쓰는 재미에 탐닉해 불화를 자초했다. 이혼과 재혼을 반복한 끝에 검약하던 시절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돈이 독이 될 수도 있음을 말해주는 사례들이다. 이번 당첨자는 제발 성공한 사례로 또 한번 화제의 주인공이 되었으면 좋겠다. 로또(Lotto)는 행운이란 뜻이 아닌가.

/문창재 논설위원실장 cjm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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