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 재처리 발표 소동에도 불구하고 베이징(北京) 3자 회담은 예정대로 열리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지만 그 전망은 매우 불투명하다. 핵 문제에 대한 미국과 북한간 시각 차를 제외하더라도 회담의 순항을 기대하기 어려운 요소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일단 열고 보자'
18일 워싱턴에서 대북 정책을 협의한 한미일의 차관보급 관리들이 북한의 폐연료봉 재처리 파동이 '영문 번역 오류'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데 공감하면서 개최 자체가 불투명했던 베이징 3자 회담은 예정대로 23∼25일 열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회담에 참석했던 이수혁(李秀赫) 외교부 차관보는 "회담이 열리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의 회담 개최 확신과는 대조적으로 아직까지 미측의 공식 발표는 나오지 않고 있다. 회담 주최국인 중국과 협의한 후 최종 입장을 정하겠다는 미 국무부의 발표만 있었다.
미 국무부·국방부 노선 갈등
3자 회담이 열리더라도 '궤도 이탈'의 가능성이 높다. 워싱턴 포스트는 20일 "북한이 재처리를 했든, 준비 작업을 완료했든 간에 북한의 행동은 이 시점에서 북한과 대화를 해야 하는가를 두고 국무부와 국방부의 싸움에 불을 붙였다"고 밝혔다.
워싱턴의 전문가들은 미국의 3자 회담 수용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이라크 전쟁 승리의 주역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부 장관과 각을 세우고 있는 콜린 파월 국무부 장관의 손을 들어준 결과로 해석한다. 부시 대통령은 3자 회담안을 보고 받고 "한국, 일본은 어디 갔나"라고 반문할 정도로 다자의 최소 형태인 3자안에 거부감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행정부내 양대 축의 균형과 북한 핵 문제에 대한 외교적 해결의 기대감 등을 고려, 3자 회담안을 수용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강경파 일부에서는 북한의 발표를 3자 회담 자체를 깨는 명분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3자 회담의 성격
미국은 이번 회담을 실질적인 토의에 들어가기 전의 예비회담으로 규정했다. 한반도 주변국 모두가 참여하는 확대적 다자의 틀을 갖추기 위한 일종의 절차적 회담이라는 것이다. 이수혁 차관보는 "베이징 회담은 한국과 일본이 다자 회담에 참여하는 것이 왜 필요한가를 북한에 전하는 설명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으로부터 핵 문제에 대한 실질적 입장과 체제 보장의 구체적 방안을 듣겠다는 북한의 입장과는 너무나 차이가 난다. 북한이 다자 확대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추가 회담 자체를 거부할 수도 있다는 게 미국의 입장이라고 이 차관보는 설명했다. 미국과의 양자 대화의 기조를 잃지 않는 선에서 다자 회담을 수용한 북한이 미국의 요구를 수용할지는 의문이다. 이 경우 회담은 실질적 진전 없이 좌초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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