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4월21일 시인 송욱이 55세로 작고했다. 송욱은 시만이 아니라 평론에도 손을 댔고, 영문학자로서 서울대 영문과에서 오래 가르쳤다. 충남 홍성에서 나 서울에서 자랐고, 일본 교토대학(京都大學)을 거쳐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등단한 것은 1950년 서정주가 추천한 '장미' '비오는 창' 등의 작품이 '문예'에 실리면서다.문학적 스승 서정주의 토속적 서정주의(抒情主義)와는 달리, 송욱의 작품 세계는 영미 주지주의를 질료로 삼은 모더니즘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특히 초기 시들이 그렇다. 송욱은 1956년부터 '하여지향(何如之鄕)'이라는 제목의 연작시 12편을 발표했는데, 현실 세계의 부조리와 무질서를 기지와 풍자와 야유 같은 지적 장치에 기대어 조망한 이 초기 시편들은 그대로 시인의 대표작이 되었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로 시작하는 이방원의 고시조 '하여가'에서 제목을 패러디한 듯한 이 연작의 첫번째 시는 "솜덩이 같은 몸뚱아리에/ 쇳덩이처럼 무거운 집을/ 달팽이처럼 지고,/ 먼 동이 아니라 가까운 밤을/ 밤이 아니라 트는 싹을 기다리며,/ 아닌 것과 아닌 것 그 사이에서,/ 줄타기하듯 모순이 꿈틀대는/ 뱀을 밟고 섰다"로 시작해, "허울이 좋고 붉은 두 볼로/ 철면피를 탈피하고/ 새살 같은 마음으로,/ 세상이 들창처럼 떨어져 닫히며는/ 땅꾼처럼 뱀을 감고/ 내일이 등극한다"로 끝난다.
송욱의 문학 세계는 그의 뛰어난 친구들과 제자들의 우정과 존경심 탓에 다소 과대평가된 감이 없지 않다. 유고집 '시신(詩神)의 주소'에서도 말끔히 지워지지 않은 멋부림과 말놀이, 더러 피상적으로 보이는 세계 인식 같은 것은 이 지적인 시인이 청년기의 문학적 재능을 그 뒤 근실히 벼리지 않았다는 표시로 읽힌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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