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끝나간다고 한다. 직접 겪은 전쟁도 아니건만 지켜본 것만으로도녹초가 된 기분이다. “전쟁을 겪은 자는 이미 젊지 않다.” 소설가 황석영이 한 말이던가. 아니 헤밍웨이인지도 모르겠다. 두 팔과 가족을 잃고“의사가 되고 싶어요. 내 팔을 돌려주세요” 울부짖는 이라크 소년 알리의 모습에서 이 말이 저절로 떠올랐다.벤자민 프랭클린은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에 좋은 전쟁이란 없다. 그리고 나쁜 평화란 것도 없다.” “전쟁의 비용을 치르는 건 부자들, 죽어가는 건 가난한 자들.” 이건 장 폴 사르트르의 명언이다. 부자 미국이 비용을 지불한 전쟁에서 죽어나는 건 가난한 이라크 국민들이니 이 말도 그대로 맞아 떨어지는 셈이다. “평상시엔 아들이 아버지를 땅에 묻지만 전시엔 아버지가 아들을 묻는다.” 헤로도토스가 했다는 이 말도 유난히 가슴을 울린다.
한달 남짓한 전쟁 기간동안 우리 가족이 나눈 대화를 떠올리면 이런 말도하나 추가할 만하다. “전쟁만큼 생생한 사회 교과서는 없다.” 한창 반전의 소리가 높을 때 TV 뉴스를 보던 중1짜리 둘째가 물었다. 아빠, 부시 또라이 아냐? 왜 죄없는 이라크 사람들을 죽이는 거야. 여기에 대한 아빠의반론은 이랬다. 부시도 물론 나빠. 하지만 후세인은 더 나쁜 놈이야. 그리고 김정일도 나빠. 부시 욕하기 전에 후세인과 김정일의 잘못도 따져 봐야해. 그게 공정한 거야.
부녀의 대화는 상당히 진지했고, 나는 옆에서 그래, 이 추악한 전쟁을 통해 아이들이 옳고 그름에 대해 배울 수 있다면 이것도 나쁘진 않지, 생각했었다.
며칠전 CNN 뉴스에선 전쟁이 청소년들을 정치적 무관심에서 구해냈다는 보도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영국의 중고등학생들이 이번 전쟁에 대해 열띤토론을 벌이는 모습을 보여주며 전쟁이 가져다 준 사회교육적 효과에 대해얘기하고 있었다.
내가 몸담고 있는 대학 캠퍼스도 마찬가지다. 등록금 투쟁이 한창이어야할 3월과 4월이 온통 반전 구호로 덮히는 걸 보며 이라크전 효과를 실감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살면서 수시로 떠올리는 진리다. 두 팔을 잃은알리와 그 가족의 희생이 아무 것도 아니라면 너무 허망하다. 이번 전쟁의유일한 전리품이 있다면 그건 지구촌 젊은이들이 생생히 보고 배운 ‘전쟁의 부도덕함’일 것이다.
이덕규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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