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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북한 달래기"의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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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북한 달래기"의 원칙

입력
2003.04.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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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핵에 이어 인권 문제가 국제적 이슈로 터지면서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시련을 겪고 있다. 핵 협상에 찬물을 끼얹을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유엔의 북한 인권규탄안 표결에 불참했던 정부는 북 핵 해결을 위한 다자회담에서 북측 요구로 한국이 제외되자 난처한 입장에 빠졌다.야당은 "북한에 아부하고 얻은 게 고작 이거냐"고 공격하고 있다. 국민 대다수의 생각도 야당과 크게 다르지 않다. 김대중 정부의 일방적인 대북정책에 불만을 품었던 사람들은 새 정부 역시 같은 길을 가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자신의 대북정책과 햇볕정책을 빨리 차별화해야 한다. 햇볕정책은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으나 자만심 집착 조급증 등으로 무리를 빚었고, 탈법사태와 국론분열을 겪었다. 노무현 정부는 햇볕정책의 무엇을 계승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

차별화의 첫걸음은 '북한 달래기' 또는 '봐주기'의 원칙을 세우는 것이다. 말썽부리는 자식 싸고 돌듯이 무조건 봐주고 달래는 방식은 한계를 드러낸 지 오래다. 일일이 상호주의를 적용하기는 어렵더라도 어떤 원칙 안에서 대북정책을 밀고 가는 투명하고 일관된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가 북한과 공존공영 하려면 북한을 도와주고 포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북한에겐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남북의 정상이 포옹하는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후에도 요지부동 변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햇볕정책 5년의 교훈이다.

새 정부는 그 교훈을 벌써 잊은 것 같다. 무조건 달래고 봐주면 달라지겠지라는 생각은 환상이다. 노 대통령은 "한국이 북 핵 협상의 당사자가 돼야 한다"든가 "북미 갈등의 중재자 역할을 하겠다"는 등의 주장을 해왔다. 과거의 경험을 무시한 그 낙관적인 장담으로 그는 지금 더 심한 공격을 받고 있다.

햇볕정책은 북에 대한 한없는 인내심과 달래기로 성공도 하고 실패도 했다. 이제는 그것을 거울삼아 분명한 입장을 정해야 한다. 북에 대해 양보할 수 있는 것과 양보할 수 없는 것의 선을 그어야 한다.

북한의 인권은 당연히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였고, 새 정부의 대북자세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전기가 될 수 있었다. 인권 문제는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고 그 어느 것과도 연계할 수 없다는 인식이 필요했다. 그러나 정부는 햇볕정책의 전철을 밟았고, 정부의 기대는 간단하게 무너졌다. 북한은 유엔 결의에 불참한 남측의 성의를 핵 다자회담에서 남한을 제외시키는 것으로 응답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북한 인권에 대한 침묵 역시 모호한 대북감정의 산물이다. 김창국 인권위원장은 국회에서 "북한 인권의 실체를 잘 몰라 섣불리 언급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라크인들의 인권을 위해 이라크 전 반대 입장을 발표하던 인권위의 기세는 북한 인권 앞에서 한없이 초라해 졌다.

북한은 이제 더 이상 '예측 불가능한' 집단이 아니다. 그들이 구사해 온 '벼랑끝 외교전술'을 파헤친 책이 미국과 유럽에서 몇 권이나 나왔을 만큼 그들의 전술은 이미 놀랄만한 것도 비밀도 아니다. 그들은 항상 상식에 반하는 전술을 들고 나온다는 점에서 예측 가능한 집단이다. 대북관계에 너무 욕심을 갖거나 조급해지면 온 세계가 다 아는 북한의 행태를 못 볼 수 있다.

북한이 잘못하는데 왜 노무현 대통령이 곤경에 빠져야 하는가. 왜 우리 정부가 김정일의 잘못을 방어하다가 국가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자기 국민들로부터 욕을 먹어야 하는가. 그런 바보짓을 청산하지 않는 한 남북관계의 바람직한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

남한과 북한은 이번 유엔 인권위원회에 일본의 정신대만행을 공동으로 고발했다. 좋은 일이다. 그런데 누군가 우리에게 "북한의 인권문제를 외면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까. "핵 협상을 고려한 전략적 선택"이라고 대답해야 할까. 이제 남북관계도 국제적인 규칙과 양식을 따를 때가 왔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낀다.

/본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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