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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지막 휴양지

입력
2003.04.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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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인노첸티 그림, 존 패트릭 루이스 글 안인희 옮김·비룡소 발행·1만원

"어느 나른한 잿빛 오후 내가 지루하게 일상을 보내고 있을 때, 내 상상력은 무시당하는 게 분했던지 휴가를 떠나 돌아오지 않았다. … 나는 화가인데 어떻게 해야 하나? 앞으로 어떻게 일하고 그림을 그리고 살아갈까?"

그림책 '마지막 휴양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상상력이 도망친 뒤 늙은 말처럼 멍청해진' 화가는 상상력을 찾아 떠난다. "외로움을 따라 망각 저편의 낭떠러지를 지나고 거미 번갯불이 치는 밤 한복판을 달려서" 도착한 바닷가 호텔. 프런트의 앵무새가 말한다. "모든 것을 잊어버리세요. 여기는 마음의 평화를 잃어버린 사람들을 위한 '마지막 휴양지'예요."

앵무새가 '대답이 물음표와 함께 춤을 추는 곳'이라고 소개한 이 이상한 호텔에서 화가는 어디선가 본 듯한 신비로운 인물들을 만난다. 방파제에서 편지가 든 유리병을 낚는 소년, 휠체어를 탄 아름답고 병약한 소녀, 밤마다 모래언덕을 파는 외다리 선장, '범죄들의 자서전'이라는 사건에 매달리는 침울한 형사, 알 수 없는 과거를 지닌 키 큰 이방인…. 그들의 정체는 불분명하지만 저마다 무언가를 애타게 찾고 있다. 모든 게 오리무중이고 수수께끼만 같다. 추락한 비행사와 거대한 흰 고래의 등장으로 이야기는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든다.

독자들은 한참 어리둥절할 것이다. 도무지 갈피를 잡기 힘든 줄거리도 기이하지만, 그림은 더욱 기이하다. 대형 유리창에 파도가 달라붙어 바다 속에 가라앉은 듯이 보이는 호텔, 모래 사장에서 양산을 쓰고 흰 드레스 끝자락을 지느러미처럼 펼친 채 금붕어가 헤엄치는 욕조 안에 앉아 있는 소녀…. 세밀하고 사실적이며 아름답지만, 그로테스크한 그림들이다.

화가는 말라빠진 늙은 말을 타고 나타난 풍차의 기사를 보는 순간 잃어버린 상상력을 되찾는다. 호텔 손님 모두의 정체와 그들이 찾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도 깨닫는다. 그는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도 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사는 집 대신 '어딘지아무도몰라' 마을로 떠난다.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정체를 끝내 밝히지 않지만, 문학작품을 읽은 독자라면 눈치챌 수 있다. 그들은 인어공주, 돈 키호테, 허클베리 핀, 몬테크리스토 백작, '어린 왕자'의 작가 생텍쥐베리, '보물섬'의 실버 선장, '백경'의 흰고래 모비딕 등이다. 이 책은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면서 독자를 매혹한다. 올해 볼로냐 아동도서전에서 특별상을 받은 책이다. 그러나 아동물은 아니다. 철학적 미스터리처럼 보이는 이 책을 읽으려면 고교생 이상은 돼야 할 것 같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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