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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노무현다운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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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노무현다운 태도

입력
2003.04.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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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50일, 언론과의 밀월 기간이 없어 더 길게 느꼈을까? 산전수전 다 겪은 것 같은 노무현 대통령의 말은 회고록을 쓰는 오래된 대통령, 전직 대통령 같다. "국민의 정부가 겪었던 실패의 과정들이 이번에도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한쪽에서는 개혁이 불안하다고 평가하고 다른 쪽에선 개혁이 물 건너갔다고 지적합니다."말할 필요가 없을 때는 침묵이 낫다는 것을 대통령이 모를 리 없다. 그렇다면 다행이다. 말의 이면까지 말이라면, 참여정부에 대한 자성적 평가는 국민의 정부가 겪었던 실패의 과정을 밟지 않겠다는 의지고, 개혁을 불안하게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일 테니까.

의지의 힘이 있지만 세상은 그 힘만으로 굴러가는 게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듯, 그 기사를 읽은 바로 그 다음 날 '북핵 북-미-중 3자회담으로 추진'이라는 뉴스가 나왔다. 쿵,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우리 문제에 우리가 빠지다니, 분명히 굴욕적이다. 주권국가로서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대통령을 뽑았다고 자부한 사람일수록 그 느낌은 고약하지 않았을까?

그보다 더 고약했던 것은 한나라당에서도 수구 중의 수구로 평가되는 세력이 "북에 아부한 결과가 이거냐"며 "이건 외교의 자존심을 넘어 국가의 근본문제"라고 추궁했다는 기사를 읽었을 때다. 왜 나는 그 추궁이 주권국가로서의 자존심에 뼈아픈 상처를 입은 사람의 간곡한 비판처럼 들리지 않을까. 어쩌면 그들은 자주적 발언권을 묵살 당한 우리의 입장을 아파하기 전에 왜 그렇게 되었는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북한 핵 문제가 터질 경우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되는 당사자 중의 당사자가 우리다. 그럼에도 북한이 우리를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자주적 외교를 수립하지 못하고 미국의 입장을 그대로 추종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미국에 독립적이지 않다는 북한의 주장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가, 부정해야만 하는 모독인가.

분명한 건 "이건 외교의 자존심을 넘어 국가의 근본문제"라고 추궁했던 그들이 국민의 정부가 민족문제에 대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때마다 즉각적으로 '왜 미국과 갈등하느냐. 한미공조가 얼마나 중요한데'라고 비판했던 집단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핵 협상에 끼지 못한 우울한 이번 사태에 대해 충고하기 이전에 '한미공조'라는 이름 하에 무조건 미국의 입장을 추종했던 기존의 행태를 반성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야 이번 사태에 대한 비판이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자주에 대한 염원처럼 들린다.

그런데 정말, 참여정부 하에서도 국민의 정부, 거슬러 올라가 김영삼 정부가 겪었던 실패의 과정들이 그대로 반복되는가? 1994년 제네바 북미 핵 협상 때, 협상은 미국과 북한이 하고 32억 달러가 넘는 경수로 건설비용은 우리가 떠안았던 것처럼, 이번에도 회담에는 끼지 못하고 돈만 낼 것인가?

참여정부는 분명히 했다. 우리가 참여하지 않은 회담에서 결정된 우리의 부담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겠다고. 아무 말도 못하고 비용만 부담했던 그 때보다는 분명히 진일보한 태도다. 더구나 94년에는 남북 사이에 직접적인 대화의 채널이 없었다. 당연히 일방적으로 미국에 의존했다. 그러나 지금은 남북한의 별도의 통로가 있지 않나 추측을 해보게 한다. 그러니 7월에 제주도에서 대규모의 종합적인 민족평화체전을 열도록 합의를 이끌어낸 것이 아니겠는가.

지난 정권과 조금은 달라진 '노무현다운' 이 태도와 행보가 얼마나 지속되고 존중을 받을 수 있을까, 이 문제가 참여정부의 외교 성적을 가늠하는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우리는 기대한다. 국제사회에서 주권적 실체임을 보여줄 수 있는 자존적 외교를.

이 주 향 수원대 인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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