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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풍 판타지"속 왜곡된 동양관/오페라 "투란도트" 뒤집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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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풍 판타지"속 왜곡된 동양관/오페라 "투란도트" 뒤집어 보기

입력
2003.04.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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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란도트의 무대는 고대 중국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판타지입니다." 24일부터 27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푸치니의 '투란도트'를 올리는 국립오페라단 정은숙 예술감독의 말이다.맞는 말이다. 좋게 보면 판타지에 가깝고 나쁘게 보면 당시 서양인들이 자기 맘대로 그린 동양의 모습이다. 우선 남자 주인공인 타타르의 왕자인 칼라프나 그의 아버지인 몰락한 국왕 티무르를 보자. 중국을 침략했던 흉노나 선비, 몽골족이라기보다 중앙아시아계에 가깝다.

투란도트 공주를 사랑했지만 3가지 수수께끼를 풀지 못해 사형 당하는 불쌍한 페르시아 왕자도 마찬가지다. 그가 중국에 올 가능성이 있던 시대라면 당나라가 가장 유력한 데 극에서는 베이징 시민들이 등장한다. 베이징이 중국의 수도가 되고 자금성이 세워진 것은 명나라 이후의 일이다. 경복궁에서 '태조 왕건'을 찍은 격이다.

공주의 신하인 핑, 팡, 퐁에 이르면 웃음이 터진다. 푸치니가 한국을 배경으로 오페라를 만들었는데 등장인물 이름이 낑, 깡, 꽁이라는 식이다. 푸치니가 대본을 만든 고치에게 "지금까지의 희곡 중 가장 정상적"이라고 했음을 역사학자들이 들었다면 실소를 금치 못했을 것이다.

삼국지 시대 다음인 5호16국 시대에 살았던 '목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명 시대에 증축한 만리장성과 자금성까지 등장시켜 버린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뮬란'이나 뮤지컬 '캐츠'에서 선원인 럼 덤 터거가 태국에서 칭기즈칸과 싸우는 등의 어이없는 설정을 감안해 보면 서양의 왜곡된 동양관은 10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최근 영화 '영웅'에서는 중국인인 장이모 감독조차도 서양인의 구미에 맞춘 동양의 모습을 선보였다.

그러나 동양 중심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서양인 눈높이에 맞추면 투란도트는 환상적인 이국풍 오페라다. 중국 선율을 흉내낸 푸치니의 음악은 정체성이 모호하지만 당시 서양인들이 듣기에는 파격이었다. '공주는 잠 못 이루고' '울지 마라, 류!'등 아름다운 아리아도 그렇다.

투란도트를 다룬 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가운데 국립오페라단이 24∼27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투란도트를 올리고(02―586―5282) 한전아츠풀과 한강오페라단은 5월8∼1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같은 레퍼토리를 올린다(02―3474―7635). 국립오페라단은 실내인만큼 음악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고, 한전아츠풀측은 자금성 세트의 규모를 내세운다. 둘 다 예매율이 각각 80%, 60%를 넘을 정도로 호조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가히 투란도트 열풍이라 할 만하다. 투란도트는 뛰어난 고전임에 틀림없지만 서양인의 시각에서 벗어나 우리 시각으로 재해석한 투란도트를 한번쯤 무대에 올리는 것도 필요할 듯하다.

/홍석우기자 muse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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