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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진보와 그의 적들

입력
2003.04.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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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소르망 지음, 이진홍·성일권 옮김 문학과의식 발행·1만4,000원

프랑스 문명비평가이자 저널리스트인 기 소르망은 우리나라에서는 세계적 석학 대접을 받는다. 그만큼 동조자, 신봉자가 많다는 얘기다. 그런 그가 정색을 하고 환경론, 환경주의를 비판하고 나섰다는 것만으로도 예사롭게 넘기기 어렵다.

이 책은 제목부터 저자의 정신적 스승인 칼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의 냄새를 짙게 풍긴다. 개인주의·점진주의에 바탕한 '열린 사회'를 이상으로 여긴 포퍼가 플라톤과 헤겔, 마르크스로 이어진 역사주의, 유토피아주의를 적으로 삼았듯, 소르망은 과학기술의 진보를 지향점으로 잡아 환경주의를 공격한다.

마르크시즘과 전체주의를 동전의 양면으로 본 포퍼처럼 소르망은 환경주의를 위장된 마르크시즘이라고 본다. 그에 눈에 비친 환경주의는 환경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음모', 미디어를 통한 '선동', 대중의 맹목적 '추종'의 구조를 띠고 있다. 또 좀처럼 반대 토론을 허용하지 않고, 이성보다는 열정을 근거로 이상향을 꿈꾼다는 점에서 환경주의는 마르크시즘과 마찬가지로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위험한 도그마라고 그는 지적한다.

그의 비판은 대개의 마르크시즘 비판이 그렇듯 풍부한 사례와 검증을 토대로 이뤄진다. 그에 따르면 클론 인간이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한다는 주장은 종교적 신앙일 뿐이며, 자연적 클론 인간인 일란성 쌍둥이에 대한 모욕이다. 유전자조작식품(GMO)이 인체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입증되지 않았고, 오히려 저농약 식품을 가능하게 하며 농업생산을 크게 늘려 기아에 허덕이는 저개발국의 불행을 덜어줄 수 있다. 핵에너지는 가장 안전하고 값싼 에너지이고, 핵 재처리 시설은 자원 재활용을 위한 것이다.

지구온난화는 인간의 역할보다는 지구 자체의 주기적 변화에 따른 것이며, 주범으로 여겨지는 이산화탄소는 자연 발생량이 연간 2,500억톤에 이르지만 호흡을 포함해 인간은 연간 70억톤을 배출할 뿐이다. 또 온실효과의 3분의 2는 수증기에 의한 것이며 자동차와 공장의 배기가스에 포함된 이산화탄소보다 가축의 분비물에서 나오는 메탄가스의 온실효과가 훨씬 크다. 심지어 모기 박멸에 뛰어난 효과를 보인 DDT 사용을 금지함으로써 야생 조수의 암컷화를 막았는지는 모르지만 매년 수십만명의 인간을 말라리아의 고통에 빠지게 했다고 주장한다.

이런 '과학'을 무시하고, '위험성이 제로(0)인 것으로 드러나기 전에는 안전하다고 할 수 없다'는 신화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환경주의는 녹색 샤머니즘일 뿐이라고 그는 통박한다.

이어 여러 가지 생산 유형 가운데 가장 위험이 적은 것, 즉 '최소의 악'을 선택해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한다. 녹색(환경주의)이나 장미색(마르크스주의) 대신 청색, 즉 스스로의 한계를 인식하고 근거 있는 비판을 수용하는 자유주의를 지향하자는 게 이 책의 결론이다. 그의 지적에 동의하든 않든, 세계적 조류인 환경론을 정면으로 반박한 그의 용기는 회의와 자기 반성이 건전한 철학과 사회운동의 바탕이 돼야 한다는 점에서는 소금이 될 수 있다.

/황영식기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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