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가고 직원 40여명이 자리에 앉아 바쁜 손길로 부품을 조립한다. 조립 라인에 자리잡은 홍모씨도 크기가 약 1㎜에 불과한 펜마우스의 펜촉을 조립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홍씨는 손과 발의 거동이 불편한 뇌성마비 2급 장애인. 마주앉은 비장애인 전모씨보다 속도는 약간 느려도 "반복해서 하니까 일이 익숙해졌다"며 부지런히 손을 놀렸다. "불량품이 나오지 않도록 집중해야죠"라며 다부진 표정을 짓는다.16일 오후 경기 수원시 입북동 (주)임마누엘전자 1층 공장. 작업 풍경은 언뜻 보기엔 여느 공장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작업대 앞에는 의자 대신 휠체어가 서너대 눈에 띈다. 뇌성마비 장애인도, 왼손만으로 제품을 조립하는 직원도 섞여 있다.
1991년에 지은 공장 건물에는 계단이 없다. 직원들은 계단 대신 경사로를 이용해 1,2층을 오르내린다. 복도도 폭이 보통 건물의 1.5배 가량 된다. 출입문은 자동문이다. 화장실에도 여닫이문 대신 커튼식 문을 달았고, 거울은 똑바로 서면 허리 높이에 있다. 모두 휠체어가 다니기에 불편이 없도록 한 배려다.
주로 마우스를 제조하는 이 회사는 직원 80명중 20명이 장애인이고, 생산직 근로자도 50여명 중 13명이 장애인이다. 많을 땐 장애인이 전체의 30%인 40여명에 이르기도 했다. 최병규(43) 사장도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는 소아마비 장애인이다.
이 회사의 장애인근로자는 소아마비를 앓거나 사고를 당해 다리에 장애가 있기는 하지만 손과 팔은 비장애인과 차이가 없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러나 뇌성마비 혹은 손 절단으로 양손 사용이 온전치 못한 직원도 자신의 역할을 찾아낸다. 최 사장은 "공정의 틈새를 파고들면 능력에 맞는 일거리가 얼마든지 있다"고 말한다.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근로자가 자재를 직접 나르기가 불편한 점을 감안, 걷는 데는 지장이 없는 뇌성마비 장애인을 자재과에 배치해 운반을 맞도록 하는 식이다.
85년 회사 설립 이후 20년 가까이 더불어 일하다 보니,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구분이 없다. 일 손이 달릴 경우 잔업을 하는 데도 차이는 없다. 물론 임금도 차별하지 않는다. 정부가 지원하는 장애인고용장려금으로 장애인 근로자 또는 직계 가족 중 장애인이 있는 직원에게 수당을 지급하기 때문에 오히려 장애인의 임금이 더 높은 편이라고 한다.
11년째 장애인 근로자들과 함께 근무해온 이미현씨는 아예 생활상담사 자격증을 따 이들의 고민을 들어준다. 이씨는 "시간이 지나면서 누가 장애인이고 누가 비장애인인지 의식조차 하기 어렵게 됐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사회적 편견 때문인지 장애인 근로자들의 내면 깊숙한 곳에는 고뇌의 흔적이 드러난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장애인직업훈련학교 등을 통해 직원을 채용하지만, 이미 '장애인 회사'라는 소문이 나 일자리를 원하는 장애인들이 직접 "사람 필요하지 않느냐"고 문의를 해오기도 한다. 최근에는 경기가 침체돼 신규채용을 못하고 있지만 직원 채용 공고를 낼 때는 '장애인 가능'이라고 항상 표기한다. 경영상 정리해고가 필요한 경우 비장애인부터 한다는 내부 방침도 세워두었다고 한다. 이 같은 경영철학은 10대 후반 온갖 기술을 배우고도 취직 한번 해보지 못했던 최 사장의 쓰디쓴 체험에서 나왔다. 최 사장은 "장애인이라도 일만 할 수 있으면 채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장애인들에게 불편이 없는 일터가 되도록 더욱 힘쓰겠다"고 말했다.
/문향란 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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