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달리기 붐이 한창이던 2000년 가을, 독일 외무장관 요쉬카 피셔(55)가 우리나라를 찾은 적이 있다.그는 독일의 시사주간 '슈피겔'이 '독일이 정말 내세울만한 장관'이라고 극찬할 만큼 유능한 정치인이지만, 우리에겐 집념의 마라토너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피셔는 당시 바쁜 일정에도 서울 남산순환도로를 뛰며 국내의 마라톤 열기를 더욱 달궜고 자서전 '나는 달린다'는 마라토너들에게 애독서가 됐다.
그는 젊은 시절 노숙자, 택시운전사, 거리 화가, 포르노그래피 번역가로 순탄치 않은 인생을 살았다. 이후 반핵운동가와 연방의원을 거쳐 장관 겸 부총리에 오른 인생역정은 현란하기 까지 하다.
힘겨웠지만 거침없이 삶의 주로를 달려 온 그에게도 생을 중단해야할 정도의 위기가 있었다. 정계 입문후 스트레스를 못 이겨 식도락과 술을 탐닉했고 몸무게는 하루가 다르게 늘어갔다. 급기야는 3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체중이 112㎏(신장 181㎝) 까지 불어나 숨쉬기 조차 버거운 비대증환자로 전락하고 만다. 축구를 즐겼던 그는 "구장에서 산소마스크를 써야만 좀 더 뛸 수 있는 상황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슬픔이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비대해진 몸 때문에 부인으로부터 버림 받는 아픔까지 겪었다.
현실을 인정할 수 없었던 피셔는 40대 후반에야 결국 달리기에 매달렸고 마라톤 완주까지 이어졌다. 피셔는 마라톤을 통해 몸무게를 75㎏까지 줄이는 데 성공한다. 이 과정에서 시련을 통해 체득한 '마라톤을 망치는 조건'들은 요즘의 국내 정치상황을 염두에 두고 일별해보면 매우 흥미롭다. 이제 막 또 다른 형태의 마라톤을 시작한 정·관계 요로의 사람들이 귀담아 들을 만한 대목도 적지 않아 보인다.
평소 달리기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1∼2㎞를 쉼없이 뛰기도 쉽지 않다. 피셔 역시 그랬다. 수백m만 발걸음을 내딛어도 숨소리가 거칠어져 주저앉고 싶었고, 맛있는 포도주를 멀리하는 것 역시 그에겐 큰 고통이었다. 계속되는 언론의 '체중감시(Weight Watching)'도 적지않은 스트레스였다.
그러나 역경을 이겨내고 도전한 마라톤 42.195㎞는 그에게 더 없이 훌륭한 선생님이 된다. "처음 얼마동안은 몸놀림이 가벼워 너무 빨리 뛰었다. 그리곤 25㎞지점에서 처참하게 무너졌다. 내 자신을 과대평가한 결과다. 진짜 마라톤은 34∼36㎞지점에서 시작된다." 피셔가 96년 함부르크 마라톤을 앞두고 훈련을 하면서 몸으로 체험한 교훈이다. 그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처음의 오버페이스, 템포, 기온 변화, 체내수분 부족을 마라톤을 망치는 원인이라고 적고 있다.
옆에 뛰는 사람들, 연도 인파 같은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과도하게 신경을 쓰지 말 것도 당부하고 있다. 시대가 바뀌었다며 체력안배와 현실상황은 아랑곳하지 않고 앞서 나가는 요로의 인사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라면 지나칠까.
마라톤 코스에서도 언론은 그에게 멍에였다. 피셔는 파파라치 처럼 따라붙어 꼬치꼬치 캐물은 한 기자를 두고 "진짜 그를 두들겨 패주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완주 후에는 "어쩌면 그는 내가 경쟁적으로 치고 나가는 것을 막아주는 부가적인 안전판이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바꿨다. 청와대 사람들부터 오늘 당장 일정거리를 정해놓고 달리기를 시작해보면 어떨까. 피셔와 똑 같은 체험을 할 지도 모른다.
김 동 영 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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