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 로베 글 크레용하우스· 초등 고학년
초등학교 4학년 때 내 짝은 자주 선생님에게 맞았다. 어느 날인가 그 날도 내 짝은 수업 중에 지적을 받았다. 화가 난 선생님이 앞으로 나오라고 했는데도 그 애는 한참 동안 제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그러더니 마침내 마음의 준비가 된 듯 앞으로 나갔다. 이미 그 애에 대한 일을 잊어버리고 교실 중간에서 수업하고 있던 선생님은 뒤늦게 앞쪽으로 몸을 돌리고서야 그 애를 발견했다. 그 날 내 짝은 제 때 안 나온 것이 더 나쁘다는 선생님의 꾸중을 들으며 맞았다.
쉬는 시간에 짝에게 뭘 잘못했는지, 그리고 왜 뒤늦게 나가서 맞았는지 물어보았다. 그 애는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는 모르지만, 어른들은 한 번 마음을 먹으면 반드시 때린다고 했다. 그 때 나는 그 애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학대받는 아이를 주제로 한 이 책을 읽으며 그 애의 말을 떠올려본다.
율리아는 탈의실에서 체육복을 갈아입다가 같은 반 하인리히의 어깨와 다리에 매맞은 자국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집에서 한 번도 맞아본 적이 없는 율리아는 큰 충격을 받는다.
다른 친구들은 며칠씩 텔레비전을 못 보거나 외출을 금지당하는 벌을 받느니 뺨 몇 대 맞는 게 낫다느니, 맞고 나면 원하는 걸 얻어낼 수 있어서 좋다느니, 하인리히는 공부도 못하고 친아버지가 아니니 맞는 게 당연하다느니, 그래도 하인리히처럼 허리띠로 맞는 것은 안 된다느니, 친부모가 손바닥이나 뺨을 때리는 것은 괜찮다느니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율리아는 그 누구에게도 함부로 아이들을 때릴 권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율리아는 하인리히가 불쌍해서 끊임없이 관심을 보이며 한편으로는 주위 어른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저마다 처음에는 누군가가 도울 거라고 물러서지만 결국 선생님과 율리아의 부모, 경찰이 각자 해야 할 몫을 감당하면서 문제는 해결되기 시작한다.
그들이 모여 의논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하인리히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었던 것은 잘못된 것은 바로잡혀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생각을 행동에 옮긴 율리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옛날의 내 짝을 생각한다. 열한 살 나이에 맞아야만 끝난다는 걸 배워버린 그 애와 힘들어도 잘못된 상황을 변화시키려는 율리아의 차이는 어디서 비롯될까. 또 같은 반 애들 중 왜 율리아만 나섰을까. 나는 과연 내 아이들을 배려할 줄 알고, 남의 아픔을 느끼고, 필요할 땐 행동하는 아이로 키우고 있나. 내 아이들을 생각하며, 뉴스에 나오는 학대받는 아이들을 다시 본다.
/대구가톨릭대 도서관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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