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는 누구나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다. 그의 영화는 정상인의 영역에서 꽤 떨어져 있는 인물을 묘사하기로 정평이 났다. 그게 사람들이 알모도바르의 영화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이유이다. 1980년대에 세계 영화계에 충격을 주며 나타난 알모도바르의 영화는 게이, 레즈비언, 이상 성욕자들의 천태만상을 묘사했다. 그것은 오랜 기간 프랑코 총통의 독재에 눌려 있던 스페인의 밑바닥에서 분출된 욕망의 용광로 같은 느낌을 주었다."알모도바르의 영화 세계가 그런가 보다"고 여긴 사람들에게 그의 최근작은 충격과 감동을 준다. 모성적 삶의 태도의 위대함을 가르쳐준 '내 어머니의 모든 것' 이래 알모도바르의 영화는 진정한 거장이 가 닿을 수 있는 성숙의 힘이 무엇인지 한 수 가르쳐준다. 올해 아카데미에서 각본상을 받은 알모도바르의 신작 '그녀에게'(사진)는 사랑하는 여자가 혼수상태에 빠져 고통을 겪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두 남자의 이야기다.
"애걔, 겨우 그 이야기야" 하실 분도 있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반신불수로 누워 있는 두 남자의 여인들은 무용수와 투우사였다. 그 여자들을 흠모했던 남자들의 모습을 통해 이 영화는 '그녀에게'란 제목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려준다. 그 남자들과 그 여자들이 소통하는 방식은 비단 말뿐만 아니라 몸을 통해서도 이뤄진다. 이 영화는 여자들이 취하는 몸 동작, 남자들의 말을 무력하게 하는 여자의 몸의 매혹을 다양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영화 속 남자들은 그저 그녀들을 바라보기만 해서는 소통할 수 없다는 것을, 그 여자들이 반신불수로 병상에 누워 있는 것을 보고서야 깨닫는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난다. 그 기적이 무엇인지는 여기서 밝힐 수 없지만 하나만 말해야겠다.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감동을 전해 준다. 절대 추천!
이상한 이야기를 이상한 방식으로 풀어 가는 것은 박찬옥의 데뷔작 '질투는 나의 힘'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는 희한한 발상에서 시작한다. 애인을 빼앗아 간 나이 든 남자 밑에서 일하는 젊은 남자의 이야기, 새로 나타난 연상의 여자를 두고 그 남자와 또 경쟁해야 하는 젊은 남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끌려가다가 결국은 감독의 인간관에 동의하게 된다. 어떤 인간이든 수수께끼 같은 구석이 있고 인간이야말로 어떤 것보다 대단한 스펙터클임을 이 과묵한 영화는 증명하고 있다. 홍상수의 영화 이래 한국영화계의 중요한 비평 어휘가 된 '일상'을 박찬옥은 색다르게 펼쳐 놓는다. 질투와 선망으로 가득찬 인간관계에서 문득 선의와 애정과 낙관이 솟아오른다. 그건 벌의 날개 짓을 관찰하는 곤충학자처럼 꼼꼼한 인간의 행동 발달 보고서를 내놓은 박찬옥의 연출 내공 덕분이기도 하다. 이 영화 역시 추천!
마지막으로 '솔라리스'는 할리우드에서 제일 잘 나가는 스티븐 소더버그 연출에 조지 클루니 주연의 비싼 할리우드 SF '예술영화'다. 72년 러시아 감독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의 작품으로도 만들어졌다. 두 영화를 비교하면 소더버그판 예술영화의 한계는 명백하다. 원작의 취지를 살려 존재의 의미를 탐색하는 것도 아니며, 아련한 멜로드라마를 만드는 것도 아닌 '헛 폼'으로 가득하다. 불면증 치료용 영화로 추천한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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