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의 해임 건의안에 대한 한나라당의 행태가 가관이다. 박종희 대변인은 16일 최고위원회의 직후 느닷없이 해임건의안의 국회 제출을 미루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박희태 대표대행은 "그리 긴박한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전날까지만 해도 당직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들고 일어나 "언론자유를 말살하는 이 장관을 이달 중에라도 자르겠다"고 호언했던 한나라당이다.급작스런 연기 이유를 물었더니, "15일 국회 문광위에서 언론관과 문화정책을 검증한 결과 우려했던 이 장관의 증세가 많이 나아졌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도대체 무엇이 달라졌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이 장관은 문광위에서 야당 공세의 표적이 됐던 기자단 폐지, 공무원 방문취재 제한, 공무원의 기자 접촉시 상부 보고 등에 대한 소신을 굽힌 적이 없다. 그는 오히려 "취재를 방해하는 정책은 전혀 없다"고 강변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시행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고칠 것"이라고 정책시정 가능성을 열어놓은 게 전부다. 립서비스에 불과한 듯한, 막연한 답변 한마디로 기세등등했던 태도가 누그러졌다면 그건 코미디다.
아마도 솔직한 이유는 "이 장관의 답변 자세가 전보다 고분고분해져서"라는 게 맞을 것이다. 실제로 문광위 소속의 한 의원은 "어제는 걸핏하면 의원들과 맞서거나 가르치려 드는 건방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며 만족해 했다.
결국 한나라당에게 새 정부의 언론정책 논란은 첫번째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저 장관을 윽박질러 길들이기나 함으로써 지난 주 본회의 대정부질문 때 구겨진 의원들의 자존심을 회복하려는, 어줍지 않은 쇼를 벌인 것 뿐이다.
유성식 정치부 차장대우 ssy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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