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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기의 진정한 의의는 비판정신"/"서유기" 4년만에 완역한 임홍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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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기의 진정한 의의는 비판정신"/"서유기" 4년만에 완역한 임홍빈씨

입력
2003.04.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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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대산문화재단에서 '외국문학 번역지원사업' 중 하나로 '서유기' 번역을 공모했을 때 "이 대작을 번역하겠다고 선뜻 나서는 번역자는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 무성했다. 방대한 분량에 비해 지원금(500만원)도 적었다. 뜻밖에도 역자는 곧 나타났다. 민족문화추진위원회·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연구원 등을 역임한 뒤 은퇴해 10여년 째 중국문학 번역에 몰두해온 임홍빈(63)씨였다. '중국역대명화가선' '수호별전' 등 그가 우리말로 옮긴 유려한 글을 본 대산문화재단은 덥석 그의 손을 잡았다."대학(한국외대 중국어과)을 졸업할 무렵 은사가 '서유기' 번역본에 대한 얘기를 들려줬다. 국내에는 중역서가 대부분이며 제대로 완역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말이 오랫동안 가슴 속에 남아 있었다. 대산문화재단의 공고가 나왔을 때 망설이지 않고 번역을 신청했다."

15일 서울 인사동에서 만난 임씨의 말처럼 '서유기' 한국어판 출판 현황은 빈약하다. 어린이용 축약본을 제외한 단행본 '서유기'는 5종 정도. 그 중 4종이 중국 조선족이 번역한 것으로, 용어와 어휘가 국내 독자들에게는 생소하다는 게 임씨의 설명이다. 더욱이 삭제·누락된 부분이 많고 내용을 축소하기도 했으며, 고전 번역에서 필수인 용어와 상황에 대한 역주(譯註)가 부족하거나 아예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김광주가 번역한 정음사판 '서유기'가 내용면에서는 완역판이지만 "대본에 대한 충분한 문헌 비평을 거치지 못한 데다 1965년에 간행돼 현재의 독자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옛 말투로 쓰여졌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그래서 그는 요즘 독자들이 이해하고 즐길 수 있도록 쉽고 자세하게 풀어서 우리말로 옮길 작정으로 99년 10월 번역 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원고지 1만6,000매의 대작 '서유기'(대산세계문학총서·문학과지성사 발행)가 4년 만에 완역됐다.

'서유기'는 당나라 현장 법사가 불경을 얻기 위해 천축을 여행한 뒤 남긴 기록이 모태가 됐다. 이 여행기는 시간이 지나면서 이야기꾼의 대본과 희곡 등으로 모양을 바꿨다가 명(明) 중엽에 이르러 장편소설로 옮겨졌다. 손오공과 저팔계, 사오정이 삼장 법사를 보호해 요괴들과 싸우며 난관을 극복하고 불경을 얻어오는 환상적 내용의 '서유기'는 동양 소설의 걸작으로 꼽힌다.

임홍빈씨가 원서로 삼은 명나라 오승은(吳承恩)의 '신각출상관판대자서유기(新刻出像官板大字西遊記)'는 세부 묘사가 풍부하고 규모가 큰 것으로, 가장 권위 있고 널리 읽히는 판본이다. 임씨는 조연 인물에 대한 서술이 간략한 명대 소설의 취약점을 메우기 위해 인물 묘사가 풍부한 청대 판본 6종을 참고자료로 삼았다. '서유기'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불교 도교 관련 자료를 구하기 위해 중국에도 다섯 차례나 드나들었다. "석가모니가 손오공에게 경어를 사용하는 번역본을 봤습니다. 손오공은 본래 요괴였다가 불가의 제자가 된 인물로 석가모니보다 위계상 위에 둘 수 없어 경어 사용은 옳지가 않지요. 종교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제대로 된 번역을 하기란 불가능합니다."

그는 '서유기'의 진정한 의의를 비판 정신에서 찾았다. 저자 오승은이 살던 명 말엽의 세상은 비참했다. 폭군 세종의 압제와 간신의 농락, 관리의 부정부패로 국운은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백성이 수탈과 착취에 신음하는 암울한 시대를 살았던 오승은에게 '서유기'는 울분을 토로하고 후세에 고발하려는 목소리였다. 소설 전체에서 빛나는 날카로운 세태 풍자의 정신은 이런 의식에서 나온 것이었다.

"서유기는 단순한 판타지 소설이나 동화, 유행어 시리즈의 대본 같은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중국인들이 1,000년에 가까운 세월에 걸쳐 갈고 닦아 쌓아올린 소설 문학의 결정체입니다. 힘든 작업이긴 했지만 후회해 본 적이 없어요. 개인적으로는 영광이었지요."

18일 1차분 1, 2, 3권이 선보이는 것을 시작으로 7월초까지 전10권이 완간된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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