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4월17일 좌익 혁명 세력 크메르 루주가 프놈펜을 점령하고 론놀 정권을 무너뜨림으로써 캄보디아 내전이 일단락됐다. 프놈펜 함락은 그 달 30일의 사이공 함락과 함께 인도차이나에서 미국이 완전히 패퇴했음을 뜻했다. 미국의 지원 아래 쿠데타를 일으켜 시아누크 국왕을 몰아내고 1970년 이래 캄보디아를 다스려온 대통령 론놀은 프놈펜이 함락되자 미국으로 달아났다.프놈펜 함락으로 일단락된 내전은 1978년 말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공으로 크메르 루주 정권이 무너지고 이듬해 1월 친(親)베트남적인 헹삼린 정부가 들어선 뒤 다시 재개돼, 1990년대 초까지 계속됐다. 1970년대 전반의 내전이 친미 반공 정권과 공산주의 반군 사이의 대결이었다면, 1979년 이후의 내전은 좌익 정파끼리의 대결이었다. 반정부 3대 세력(시아누크 전 국왕, 크메르 루주, 크메르 인민민족해방전선)은 동남아시아 국가연합(ASEAN)과 유엔의 지지 아래 친중국 노선을 펼친 반면, 프놈펜 정부는 친소·친베트남 노선을 취했다. 내전은 1991년 10월 파리에서 4대 정치세력이 평화협정에 서명함으로써 종식됐고, 두 해 뒤 제헌의회에서 입헌군주제 헌법을 채택해 시아누크가 국왕에 취임하면서 캄보디아는 정상 국가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그 뒤에도 오래도록 이 나라의 정정은 뒤집힌 원뿔처럼 불안정했다.
캄보디아 현대사에서 가장 끔찍한 장면은 내전기가 아니라 두 차례 내전기 사이의 '평화기'에 펼쳐졌다. 키우 삼판, 폴 포트 등이 이끄는 크메르 루주 정권은 그 네 해 동안에 혁명의 이름으로 적어도 1백만명 이상의 동족을 잔혹하게 살해했다. 흔히 '킬링 필드'라고 불리는 이 학살극은 제어되지 않은 유토피아주의의 내면이 얼마나 추악해질 수 있는지를 섬뜩하게 보여주었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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