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정부는 외교부, 해양수산부 등 정부 8개 부처 장관들의 공동명의로 '21세기 해양영토개척을 위한 극지과학 개발계획'이란 사업계획서를 통과시켰다. 이 사업은 향후 10년간 3,6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자해 향후 남극에서의 자원개발 가능성에 대비하자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남극에 제2기지를 건설하고, 쇄빙선을 건조하여 본격적인 자원조사를 하는 것으로 되어있다.이 계획이 OECD가입국가로서 자국 과학기술의 수준을 겨루고 지구촌 환경문제를 위한 연구활동에 기여하기 위한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문제는 사업제목처럼 한국정부가 남극대륙을 마치 무주공산(無主空山)인양 '해양영토를 개척한다'고 명시하여 국제사회의 비웃음과 비난을 사는 시대착오적인 인식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세계는 지금 남극대륙을 무주공산이 아니라 인류공동의 세계공원(World Park)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초기에는 남극이 극지탐험의 대상에서 핵무기실험 및 자원개발의 장으로 인식되어 몇몇 국가들의 영토권 주장이 대두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국가간 분쟁의 소지를 없애고 남극대륙 한 군데 만이라도 인류공동의 미래를 위한 순수 과학연구의 장으로 남기자는 인식이 확산돼 1950년대 말 남극조약을 맺어 이 지역의 평화적 이용과 과학연구의 완전한 자유를 보장하는 초유의 공동정부적 성격을 띤 국제기구를 발족시켰다.
최근에는 남극에서의 모든 자원개발을 금지하고 강력하게 남극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환경보호의정서를 채택하여 몇 걸음 더 나아갔다. 자원개발 금지기간을 50년으로 정하고 있지만 한 나라라도 반대하면 개발할 수 없도록 만장일치의 의사결정구조로 되어있어 사실상 영구히 개발을 금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9월 폴란드에서 열린 남극조약 협의당사국회의에서 한국정부의 개발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외국 참가자들은 아연한 듯 실소를 참지 못했다.
다른 나라 정부대표단이 열심히 자국의 과학연구 실적을 자랑하고 수백여 개의 보고서를 배포하는 동안 한국대표단은 시종일관 입을 다물었고 북극연구계획 보고외에는 단 한 장의 연구보고서도 내지 않았다. 오히려 회의 도중 한국이 다른 3개 나라와 함께 남극보호를 위한 기본적인 국내법 제정도 하지 않고 있다며 조약의무를 이행하라는 공개적인 지적을 받아 망신만 당했다. 정부는 남극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고, 남극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전지구적 움직임에 적극 동참해야 할 것이다.
최 예 용 환경운동연합 시민환경연구소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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