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형제애를 노래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의 4악장을 들으며 학살의 현장을 본다면 어떨까. 루이 암스트롱이 'What A Wonderful World'를 흥얼거릴 때 총격을 받고 쓰러지는 어린이를 본다면 또 어떨까.'볼링 포 콜럼바인'은 이처럼 서로 다른 엉뚱한 이미지를 붙잡아 박치기를 시키는 꽤나 발칙한 수법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다큐멘터리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부시 대통령에게 폭언을 던지며 감사의 말 대신 반전 사자후를 토한 마이클 무어 감독. 야구 모자에 텁수룩한 수염, 대충 입은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으로 '또라이' 아닐까 싶은 말투를 구사하는 그는 9·11 테러 이후 공포에 질린 나머지 더 많은 폭력에 의존하는 미국 사회 심장부를 '핵무기'로 겨눈다. 핵무기의 이름은 바로 웃음이다. 이 작품은 콜럼바인 학교 총기 사건을 화두로 삼아 총 없이는 살지 못하는 공포 사회 미국의 이면을 들춘다.
콜럼바인 고교 총기사건의 원인은 무엇일까. 마릴린 맨슨 같은 가수들의 불온한 록 음악? 잘못된 가정 교육? 마이클 무어는 그런 설명은 터무니 없다고 말한다. 그건 마치 콜럼바인 고교 총기사건의 두 주인공 에릭과 딜런이 사건 당일 아침 볼링을 쳤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주장이다.
'우리 애는 우리가 지킨다'며 부모들이 사설 사격 훈련소를 찾고, 교사에게 장난으로 닭다리를 겨눈 학생이 정학을 당하고, 초등학교 1학년이 같은 반 아이를 쏘는 미국 사회가 원인이다. 해마다 미국에서는 1만1,127명이 총기 사고로 사망한다. 총을 사면 더 안전해질 줄 알았던 미국인은 더 많은 총을 구입함으로써 친척과 친구는 물론 자신의 생명을 잃는다.
이 작품의 매력은 무차별 인터뷰에 있다. 찰톤 헤스톤 같은 명배우를 비롯해 마릴린 맨슨, 콜럼바인 총격사건 희생자 등 엄청나게 많은 사람을 만나 총기 사건의 배후를 캔다. 그리고 이 인터뷰를 통해 철저히 상식을 깨부수면서 문제의 본질에 다가간다. 계좌를 트면 총을 주는 은행에 찾아가고, 콜럼바인 사건에 쓰인 총탄을 판매한 K마트를 찾아가 사과를 요구하며, 사건이 나기를 기다렸다는 듯 콜럼바인에 와서 총기애호가 집회를 연 미국총기협회 회장이자 오스카 수상자 찰톤 헤스톤의 집에 쳐들어간다. 그는 일상의 구석까지 파고 든 공포산업의 실체를 보면서 마릴린 맨슨의 말에 동의한다. '입 냄새 나면 왕따 당한다, 여드름 나면 여자가 안 따른다…. 온통 공포를 조장한 광고예요. 그런 게 우리 경제의 기초죠."
그렇다면 해법은 뭘까. 코미디언 배우 크리스 록의 말처럼 총알 한 발에 5만달러 정도는 값을 매겨야 하는 건 아닐까. '돈이 없어서 지금은 살려 둔다, 총알이 할부가 안 되길 빌라구' 같은 말밖에 할 수가 없을 테니 말이다.
산만하고 과격하지만, 오히려 그런 거친 방식 때문에 마이클 무어의 진지한 문제제기는 생생하게 느껴진다. 영화 전문 미국 인터넷사이트 IMDB에서는 10점 만점에 8.9점을 받았고, 아카데미 다큐멘터리상을 비롯 전미작가협회 각본상 칸 55주년 기념상 등을 수상했으며 전미 언론이 선정한 '올해의 베스트 영화 10'에 꼽혔다. 'Bowling for Columbine'. 24일 개봉. 15세 관람가.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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