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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어리석은 농부와 귀신들의 합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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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어리석은 농부와 귀신들의 합창

입력
2003.04.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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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세르 케미르 글·엠레 오룬 그림·이효숙 옮김 솔 발행·8,500원·초등 저학년 이하

"만약 귀신이 도와 주겠다고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림책 치고는 첫 마디가 좀 무시무시하지 않은가. 9세 이하 어린이용으로 나온 이 책은 어른이 읽어도 섬뜩한 구석이 있다. 그림은 어두운 색조로 일관하고, 귀신은 사람의 형상을 닮았으면서 갈수록 기괴해진다.

아라비아 전래 동화를 각색해 만든 이 그림책은 어느 가난한 농부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거라곤 가난뿐인 농부가 있었다. 어려운 중에도 결혼해 아이까지 낳은 농부는 그 가난을 아들에게 물려주기 않기 위해 귀신들의 밭을 일구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막 잡초 뽑기를 시작한 농부의 귀에 "너 거기서 뭐 하는 거냐?"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 글쎄요, 가시덤불을 뽑고 있었던 건 같은데…" "도와 줄 테니 기다려라!"

발만 들여놓아도 화를 당한다는 귀신들의 밭을 일구는 사람을 오히려 도와주다니, 농부는 의외였다. 게다가 돌을 치우고, 밭을 갈고, 밀 씨앗을 뿌리는 것까지 일이 한 가지씩 늘어날 때마다 귀신들은 계속 두 배로 불어나면서 순식간에 농사를 해치운다. 결국 농부는 그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게 되었을까? 아니다. 아들도 죽고, 아내도 죽고, 결국 농부도 죽는다. 그리고 그 땅은 강이 되어 버린다.

이 동화에서 굳이 교훈을 찾으라면 언제까지나 도움을 줄 거라고 믿었던 힘이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는 정도일 테지만 그런 걸 몰라도 상관 없다. 사람을 흡인해야 한다는 이야기의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힘이 이 그림책에는 살아 넘치기 때문이다.

점점 불어나는 귀신의 숫자는 읽는 사람에게 알게 모르게 공포감을 조금씩 불어넣어간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수만 명의 귀신은 농부의 아들을 때리고, 아내의 머리를 쥐어 뜯는 '악귀'로 돌변한다. 귀신에까지 의지해 가난에서 벗어나려던 농부의 꿈은 안타깝게도 자신과 가족의 목숨까지 잃는 것으로 끝난다. 귀신의 밭이 강으로 변한 건 이런 애처로움의 상징으로 볼 수도 있다. 이 동화는 무섭고도 슬픈 이야기이다.

글을 쓴 나세르 케미르(55)는 튀지니 출신의 영화 감독. 지금은 프랑스에서 동화작가로 활동 중이다. 그림을 맡아 빼어난 솜씨를 보여준 엠레 오룬(27) 역시 아랍권 터키 출신의 일러스트레이터이다. 지난해 프랑스에서 발간돼 프랑스 학부모위원회 추천 도서에 선정됐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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