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죄가 있어서 '청와대 브리핑'까지 맡게 됐네요."박종문(朴鍾文·46)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의 '원죄'는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노무현 브리핑'을 처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 덕에 그는 '인수위 브리핑'을 거쳐 '청와대 브리핑'까지 맡게 됐다.
박 비서관이 '노무현 브리핑'을 시작했던 지난해, 노 대통령은 "하는 것은 좋지만 하다 그만둬도 괜찮다"며 별 기대를 갖지 않았다. 그러나 박 비서관은 "신문처럼 핫(Hot)하게 만들자"라고 가닥을 잡았고, 결국 이 컨셉은 성공적으로 자리잡았다. 이제는 오히려 노 대통령이 "이런 것 한번 취재를 해보면 어떨까", "이런 것을 다뤘으면 하는데…"라며 기사 청탁을 한다.
그의 인생에서는 중요한 전환점이 몇번 있었다. 우선 그는 외무고시 14기 출신이다. 그러나 5공 시절, 호남 출신인 그에게는 별로 비전이 안보였다. 그래서 1985년 과감히 신문기자의 길을 택해 조선일보에 입사했다. 하지만 후에 "선택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고 88년 한겨레 신문 창간과 동시에 조선일보 동료 11명과 자리를 옮겼다. 그렇게 15년 동안 신문기자를 하던 그는 2000년에는 연합뉴스 사장으로 임명된 김근 전 한겨레신문 논설위원을 따라 연합뉴스로 옮겨 경영기획실 기획위원으로 일했다. 따지고 보면 정치계에 발을 담그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그는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는 것을 보고 '정치가 답답한 공간이 아니라 활동의 장이 될 수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때쯤 눈에 들어온 사람이 노 대통령이었다. "대선에서 못이겨도 상관이 없다. 지역주의를 깬다는 명분이 있는 사람은 노무현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2001년 가을 노 대통령을 만나 "같이 일할 기회를 달라"고 말했고 2002년 5월 노 대통령의 민주당 대선 캠프에 합류했다.
그는 요즘 특히 신경을 쓰는 부분은 언론관계이다. '청와대 브리핑'에서 '해명과 반론'을 통해 각 신문의 칼럼, 사설에 대해 날카로운 반론을 펴느라 종종 언론계 동료·선배로부터 항의도 받지만 이를 그만두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본격적인 언론개혁이라고 말한다면 어폐가 있다"며 "단지 그 동안 잘못된 언론·정부 관계 관행의 개선"이라고 주장한다. 언론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대통령과 코드가 일치하는 것이다. 그는 "참여정부의 탄생에 동참하게 된 것이 일생일대의 행복"이라고 말할 정도로 지금의 일을 즐기고 있다.
/고주희 기자 orwell@hk.co.kr
사진 손용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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