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명이 넘는 국내 남녀 프로골퍼 중에서 동호인들과 제일 친근한 사람을 꼽는다면 아마 박세리도, 최경주도 아니고 임진한(林陳漢·46)이라 해야 맞을 것이다. 신문에 가장 많은 레슨 칼럼을 쓰고, TV의 골프채널에서도 레슨을 쉬지 않는 게 그이다. 또 퍼팅 능력 향상을 위한 연습기구와 눈 좋아지는 약 광고까지 하니 골프팬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그와 접하게 된다. 때로는 "연예인도 아니고 운동선수가 지나치게 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 정도. 그러나 임진한의 골프인생을 아는 사람은 매스컴이 끊임없이 그를 대중 앞에 내세우는 이유가 30년 가까이 겸손과 노력, 도전정신으로 쌓아 온 명예와 신뢰 때문임을 이해한다. 임진한은 여러 가지 기록을 갖고 있다. 우선 1977년 프로 입문시 183㎝로 최장신이었다. 큰 키 덕에 롱아이언 샷이 일품이었고 일찌감치 큰 무대로 눈을 돌려 일본 정규투어 진출 1호가 되었다.그는 또 국내 최초로 골프훈련소인 LGTC(임진한 골프트레이닝센터)를 설립해 꿈나무를 키우면서 국내 첫 골프구단인 이동수구단의 감독도 맡아 젊은 프로들을 조련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은 만 50세가 되는 2007년에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미 시니어PGA에 도전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지난해 일본 PGA(프로골프협회)정규투어 첫승과 국내 2번째 우승(신한동해오픈)을 기록한 허석호(30)와 역시 2002년 LPGA(여자프로골프협회) 다관왕(3승) 상금왕 신인왕을 휩쓴 슈퍼루키 이미나(22)가 이동수구단에서 임진한 감독이 만들어 낸 작품이다. 신인이 상금왕이 된 것은 96년 박세리 이후 이미나가 처음.
80년대 연습장 프로시절 그의 밑에서 프로테스트 준비를 했던 봉태하(국내 4승) 최광수(국내 12승 해외 2승) 강욱순(국내 9승 해외 6승)이 모두 대성했고, 96년 입문한 제자 모중경도 국내 2승, 해외 1승 등으로 통산상금 16위에 올라 있으니 임진한은 자신이 스타일뿐 아니라 골프계 최고의 스타 메이커임이 분명하다. 95년에 데뷔해 2000년 슈페리어오픈 2위를 한 김태훈도 제자이다. 농구 국가대표 출신인 부인 황영숙씨와 사이의 두 딸중 막내인 소연(죽전중 2)도 아버지에게 골프를 배우고 있어 또 한명의 스타가 탄생되는 것은 시간문제.
그는 이렇듯 자신의 제자들이 성공한 데 대해 "기술적으로 많은 것을 가르쳤다기 보다는 성실성과 정신적인 자세를 심어 준 것 같다. 통산상금 1위인 최광수(43) 같은 후배가 지금까지 연습벌레로 불리는 것은 연습생 시절 몸에 밴 성실성 때문일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경기 여주군 이포CC의 LGTC 훈련장에서는 이동수구단 프로 9명과 캘러웨이 지원으로 출범한 '영건스' 선수를 포함한 주니어 30명이 코치 14명과 훈련하고 있다.
98년 김태훈 허석호 양용은 등 프로 3명과 학생 8명으로 골드CC에서 LGTC의 문을 연 임진한은 2000년 2월 골프의류 메이커인 이동수패션이 구단을 창단하면서 감독으로 영입됐다.
4년간의 일본생활서 상금을 벌어 한해 1억원에 달하는 출전경비를 대느라 고생했던 임진한으로서는 돈 걱정없이 훈련과 경기에만 전념토록 지원해 주는 스폰서의 필요성을 절감하던 차였다.
그는 77년 20세로 프로에 데뷔한 후 83, 84년 PGA선수권을 연패하며 상승세를 타다가 침을 잘못 맞아 복강염으로 3년반동안 선수생활을 중단하는 불운을 겪은 바 있다. 하지만 87년말 복귀하고 91년 일본 프로무대에 진출해 2년만에 정규투어 풀시드를 따낸 의지의 골퍼. 국내에서는 93포카리오픈과 96낫소오픈, 2000 SBS최강전 우승을 더해 통산 5승을 기록했다.
일본에서의 활동은 화려하지 못했다. 93관동오픈과 고쿠라엔컵 우승이 전부. 그러나 "너무 늦었다. 일본 정복은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투어대회를 통해 국내에서 골프에 매달리고 있는 1,600명의 주니어들에게 도움될 것을 배우자는 결심을 했다.
한국프로들은 보조운동 없이 라운드만을 훈련으로 생각하는데 반해 그들은 체력훈련에 더 중점을 두고 있는 것부터가 새로웠다. 프로테스트에 합격해서는 후지산 밑의 JPGA도장에 들어 가 1주일간 프로가 가져야 할 정신과 사회적 의무, 트레이닝 방법, 스폰서에 대한 의무, 인터뷰시 스폰서 홍보 방법 등을 교육받았다.
일본에는 오자키, 아오키, 나카지마 군단등 5∼6개의 팀이 있어 2∼30명씩 같이 트레이닝과 라운드를 하는데 동양에서는 역시 테두리 안에서 훈련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것도 실감했다. 프로들이 경쟁하며 모범을 보이고 주니어는 이를 모방하며 성장하는 지금의 LGTC와 이동수구단의 공동훈련 시스템은 바로 일본서부터 구상해 온 것이다.
그는 3년전 이동수 회장(2002년 작고)으로부터 감독직을 제의 받았을 때 '선수를 회사홍보에 쓰지 말라. 3년안에 최고구단을 만들어 성적으로 홍보해 주겠다' '선수에게서 레슨받을 생각을 하지 말라'는 두 가지 조건을 내세웠다. 이회장은 이 약속을 철저히 지켰고 임감독은 성적으로 보답했다.
이동수구단은 선수 선발때부터 인성테스트를 하는 게 특이하다.
"프로골퍼는 도덕성과 희생정신을 갖고 사회에 이바지하며, 스폰서에 대한 의무와 프로골퍼로서의 명예를 지켜야 한다. 이를 이행 못할 사람이 스타가 되면 안 된다"는 게 그와 이동수회장의 공통된 지론였다. 특히 잘못된 행동은 자신을 지원해 주는 스폰서의 이미지와 상품매출에도 악영향을 주므로 프로는 절대 모범적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인성이 최우선이고 두번째가 체력, 그 다음이 기량이다. 이동수구단에 들어가면 육체적으로도 강행군을 견뎌야 한다. 팔의 근력을 키우기 위해 90kg짜리 역기를 20회씩 드는 등 웨이트훈련을 2시간 하고 숏게임 4시간, 롱샷 2시간, 라운드 2시간등 꽉 짜여진 프로그램대로 바쁘게 일과가 돌아간다.
국가대표 출신인 허석호는 95년 프로합격후 군입대로 운동을 중단한데다 무릎부상으로 기량이 크게 떨어졌었다. 98년 임진한감독을 만났을 때는 샷의 거리가 그보다 20m나 뒤졌다. 그러나 무릎 치료와 함께 체력강화와 롱샷 연습에 집중하며 2000년 상금 15위에 올랐다.
허석호에게는 수시로 100야드 이내의 샷중 100개를 목표 1m 안에 붙이는 과제를 주었다. 그러려면 2,500개를 쳐야 했다. 일본행은 감독이 나서서 신청하고 "너는 할 수 있다"며 억지로 떠밀었다. 그 결과 2001년 2부투어 3회우승과 상금1위로 풀시드를 획득했다. 그해 포카리오픈에서 국내 첫 우승까지 기록했다. 임감독은 "평균타수를 보니 일본 정규투어에서도 충분히 우승할 수 있다. 우승하기 전에는 한국에 오지 말라"고 더욱 밀어붙였고 허석호는 2002년 최고권위의 PGA선수권에서 1위와 1타차의 3위를 한후 7월 주켄산교오픈에서 첫 우승을 이루고, 9월 국내의 신한동해오픈에서 또 우승했다. 허석호는 2002년 한해동안 구단의 연봉과 보너스 3억원을 포함해 10억원이 넘는 수입을 올렸다.
임진한 감독은 선수들에게 항상 "연습은 혹독하게 하고 시합은 편하게 즐겨라. 반드시 결과는 연습대로 나온다"고 강조한다.
이동수구단이 성공한 후에는 다른 기업에서 프로포즈가 있었으나 중소기업으로서 연간 15억원을 선수들에 쏟은 고 이동수회장에 대한 고마움 때문에 거절했다고 한다.
지금은 허석호가 지난해 12월 미국 PGA선수권 콸리파잉스쿨 최종라운드에서 몸살 때문에 탈락했는데 금년 재도전에서 성공시켜 최경주를 잇도록 하는 게 큰 과제이다.
그리고 제2의 허석호로 기대되는 문경돈과 작년 포카리오픈 2위를 한 이인우, 작년 여자 상금9위인 조경희를 금년에 우승시킨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유석근 편집위원 sky@hk.co.kr
● 프로필
생년월일= 1957년 6월 24일
출생지=부산
가족=황영숙씨(44)와 2녀
프로입문= 77년 9월
장기= 롱아이언샷
우승경력= 83,84PGA선수권, 93포카리오픈, 96낫소오픈, 2000 SBS 최강전, 90싱가포르 요코하마 클래식, 93일본 관동오픈, 93일본 고쿠라엔컵
현 임진한골프트레이닝센터 원장 이동수골프구단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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