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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책임총리는 거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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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책임총리는 거저 되지 않는다

입력
2003.04.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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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종합청사 통합 브리핑실의 별관 이전 문제로 불거진 총리실의 소리 없는 분노가 국정홍보처장의 브리핑실 운영방안에 대한 보고로 일단락 되었다. 뒤이어 노무현 대통령이 새삼스럽게 책임총리론을 들고 나온 것으로 미루어, 통합 브리핑실 이전 논란은 단순히 국정홍보처와 총리실 사이의 의사소통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총리실의 위상 정립이 참여정부 출범 이후 의도했던 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판단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인수위원회 때 논의되었던 책임총리제의 실체는 안개 속에 묻혀버린 듯 국정의 전면에는 노 대통령과 청와대 인사들 그리고 몇몇 장관들만이 돋보인다.노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책임총리제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극복하기 위한 제도로서 큰 의미가 있다. 헌법에 보장된 국무총리의 권한을 실질적으로 보장하여, 분권적 정부형태를 실험할 수 있는 좋은 제도로서 국민의 기대도 그 만큼 크다. 오랜 제왕적 대통령제를 벗어나 분권적 대통령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노 대통령은 본인의 분권 의지를 표명하는 선언적 차원에 그치지 말고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조속히 실행에 옮겨야 한다. 국정연설을 통해 밝힌 감사원 회계감사 기능의 국회이전의 문제도 과연 헌법개정 없이 어떠한 방법으로 실행할지 구체적인 대안이 없어 공허해 보일 뿐이다. 책임총리제 역시 효율적인 국정 분담과 총리의 국정조정력 강화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조속히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직 확대만으로 책임총리제가 구현되는 것은 아니지만 인수위 때부터 논의한 대로 국무조정실장 아래에 차관급 자리를 신설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에 앞서 노 대통령과 고 건 총리가 국정운영 영역을 나누어 서로의 책임 소재를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는 총리가 국정운영의 중요한 파트너로서 대통령과 충분히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환언하면 국무총리가 국정 전반의 정책결정 과정에서 소외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책임총리는 책임만 지는 총리를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전략 과제를 노 대통령이 직접 챙긴다 하더라도 사전에 고 총리와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 개혁적 코드가 맞지 않아 종종 어긋나는 일이 있을지라도 총리의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하는 대통령의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각 부처 장관들도 총리의 권위와 권한을 인정하고 조정을 받아들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장관들의 돌출 발언과 부처간 정책혼선도 줄일 수 있다.

동시에 권력분점의 새 틀을 제도화하기 위해서는 고 총리의 자세 전환이 중요하다. 과거 권위주의적 리더십 하에서 길들여진 '원만한 총리' 스타일에서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파행과 모순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고 총리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타파하고 행정부의 정치적 중립을 확립할 수 있는 호기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책임총리제의 확립은 행정부내의 권한을 대통령과 총리가 분점한다는 좁은 의미를 넘어서 대통령과 정당, 대통령과 의회와의 균형과 견제를 향한 중요한 첫 걸음이라는 의미가 크다.

차제에 고 총리는 '행정의 달인'에서 탈피하여 정치인으로서의 역량을 발휘할 각오를 새롭게 해야 한다. 초연한 듯 뒷자리에서 사태의 추이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앞서서 진두지휘도 하고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흙탕에도 뛰어들어야 하며 필요하면 청와대를 향해서도 목청을 높일 수 있는 총리가 되어야 한다. '개혁 대통령-안정 총리' 구도로 참여정부의 국정운영이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목이 쉬도록 소리쳐야 할지도 모르겠다. 대통령과의 견제와 균형을 위해서 고 총리는 정권의 '정치적 방패'가 아니라 소신 있는 '정치적 창'의 역할을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

이 정 희 외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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