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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이름 붙이기

입력
2003.04.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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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스(중증 급성호흡기 증후군) 환자로 추정됐던 한 국내 여성이 일단 아닌 것으로 밝혀져 다행이다. 사스는 본격 확산된 지 한 달이 됐고 감염자는 3,000명, 사망자는 100명을 넘어서고 있다. 그렇지만 초기에 비해 이 병에 대한 무서움은 많이 사라졌다. 시간이 가장 큰 역할을 했겠지만, '괴질'을 '사스'라고 바꿔 부른 것도 한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괴질이라는 명칭이 주는 공연한 두려움 등을 상당 부분 희석 시켰기 때문이다. 양돈협회가 '돼지 콜레라'를 '돼지 열병'으로 개명하겠다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돼지 콜레라는 인체에 해가 없는데도 콜레라라는 명칭 때문에 불필요한 오해와 혐오감을 불러일으켜 돼지고기 소비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내과학회는 얼마 전 '성인병'을 '생활습관병'으로 고쳤다. 이 병은 대부분 흡연 과식 과음 운동부족 등 잘못된 생활습관의 반복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따라서 올바른 생활습관을 가져야 한다는 인식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학회측은 설명했다. 더 나아가 이 병에 대한 지속적인 위험성 경고에도 불구하고 환자가 계속 늘고 있어 이에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한때 '금융특수부'로 불렸던 서울지검 형사 9부가 '금융조사부'로 문패를 바꿔단 것도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밝힌다는 점에서 환영받을 만하다.

■ 이름을 잘못 붙여 곤혹을 치른 경우도 적지 않다. KT& G가 새로 출시한 '클라우드 나인'이라는 담배가 좋은 예다.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이 말은 천국에 이르는 계단의 마지막 9번째를 지칭해, 보통 인생에 있어 최고로 행복한 절정의 순간을 의미한다. 하지만 '클라우드 나인'은 엑스터시의 한 종류인데다 마약을 뜻하는 은어로 쓰이고 있다. 회사 이름을 영어로 바꾼 기업이 민영화 이후 첫 제품의 이름을 이렇게 지었다는 것은 그만큼 소비자를 가볍게 보고 있다는 증거라고 비난 받을 만하다.

■ 갈수록 시계(視界)가 불량해지고 있다. 세상은 나날이 복잡해지고 꼬여 간다. 그럴수록 정확한 현실 인식을 위해서는 현상을 똑바로 보는 것이 선행 조건이다. 이름을 잘 붙여야 하는 것이다.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는 미·영 연합군은 '해방군'인가, 아니면 '점령군'인가. SK그룹 뿐 아니라 재계 전반을 뒤흔들고 있는 크레스트 증권은 '기업 사냥꾼'과 '가치 투자자' 가운데 어느 쪽으로 불러야 좋은가. 이름 짓기는 점점 힘들어진다. '작명소'라도 찾아야 할까 보다.

/이상호 논설위원 s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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