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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포커스]"산업의 문화화"를 말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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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포커스]"산업의 문화화"를 말하는 사람들

입력
2003.04.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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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돈 이야기인가? 그렇다. 문화가 돈 된다는 이야기인가? 그렇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든 영화 '쥬라기 공원' 한 편이 벌어들인 돈이 현대자동차 160만대 팔아서 버는 돈과 같다는 이야기인가? 아니다. 문화산업이 돈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문화산업을 일으키면 중공업을 일으키는 것보다 수익성이 더 높다는 이야기는 한 물 갔다. 이제는 산업을 문화화하자는 것이 새로운 화두다. 어떤 산업도 문화화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문화를 이야기하면서 다시 경쟁력을 말해야 한다. 서글픈가? 약간은. 그러면 이렇게 정리해보자. 문화는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우리가 여유를 즐기는 방식이라고, 삶을 향유하는 것 그 자체라고. 그리고 그것이 경제의 방향을 결정짓게 되었다고. 약간은 위로가 되는가? 글쎄. 더 들어보자.

14일 오후 7시15분.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의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를 지낸 방송인 정진홍(40)씨가 '최고 경영자 문화·예술 과정' 수강생들에게 '감성 리더십'을 강의하고 있다. '최고 경영자 문화·예술 과정'은 기업가들에게 문화 마인드를 심어주기 위해 탄생한 최고위 강좌. 3월에 단국대가 먼저 시작한 후 이어 4월에 예종도 개강했다. 모두 40명을 모집하려고 했으나 신청자가 많아 60명 가까이 수강생을 늘려야 했다. 관계와 재계의 인맥을 만들기 위해 시작된 최고위 강좌가 뜻밖에도 권력과는 거리가 먼 문화·예술에서 이렇게 인기를 끌고 있다. 문화·예술은 새로운 권력이 된 것일까?

강의는 먼저 "디지털이 무엇인가"하는 질문으로 시작됐다. 기업가와 문화인으로 구성된 수강생 가운데 대답한 이는 딱 한 사람. 박인구(57) 동원F& B 대표만 "크기와 세기의 조합을 0과 1로 표현하기에 아날로그보다 정확하다"고 말한다.

정씨는 반응이 적은 청중을 향해 "여러분의 통념이 없기에 강의하기 편하다"며 휴대전화를 예로 들며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비교로 들어갔다. 아날로그가 소리만 전달하는데 반해 디지털은 사운드 이미지 데이터 텍스트를 한꺼번에 전달한다고. 그런 점에서 디지털은 인간의 오감에 호소하는 매체이며 디지털 시대에는 오감을 완전히 복원해내는 사람이 주도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오감이 복원되는 사회는 인체의 한 가지 기능을 극대화시킨 아날로그 시대보다는 더 총체적인 인간의 원형을 찾아가는 것이며 그런 점에서 인간의 감성이 더욱 중시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런 변화의 기운은 우리나라 시장 곳곳에서 발견된다는 것. 그는 현대자동차보다 디자인이나 기술력에서 뒤지는 삼성 SM5가 한때 품귀사태까지 빚었던 것은 광고를 통해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라고 소개한다. 또 어떤 보험회사는 가입자들에게 매년 유서를 쓰게 함으로써 특별한 상품으로 거듭났다고. 그는 이제 자동차는 다리품을 대신하기 위해, 냉장고는 음식을 차게 보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멋진 삶'이라는 욕망을 표현하기 위해 구매되고 있다며 이 같은 소비자들의 변화를 읽으려면 감성을 복원해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마음이 시장을 지배한다는 가설은 이미 아담 스미스가 1759년의 '도덕감정론'이라는 책에서 제시했지만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정부의 간섭이 사라진 디지털 시대에야 현실이 됐다며 눈깜빡할 사이에 32억달러가 왔다 갔다 하는 국제결제 시대에 사람의 마음 말고 어떤 것이 그 흐름을 주도하겠는가고 반문했다. 결국 미래사회는 감성이 시장을 주도하며 마음산업이 활개를 치는 '드림 소사이어티'이기에 최고경영자는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스토리텔러' '콘텐츠크리에이터'(왠 영어를 이렇게 많이 쓰는지…)가 되어야 한다고 정씨는 강의를 끝맺었다.

이날 강의를 들은 신호주(54) (주)코스닥증권시장 대표는 "업계에서는 IT(Intelligence Technology) 산업이 위기를 맞으면서 그 이후가 무엇이 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많다. 결국에는 CT(Culture Technology)가 될 것이라고 생각들은 하지만 CT의 실체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논의만 많은 실정인데 정 교수의 강의로 단초를 많이 얻었다"고 말했다.

이금룡(52) (주)이니시스 대표는 진작부터 문화의 힘을 실감하고 있었다고 환호했다. "주식의 시가총액이 4,500억원이라는 다음의 본질은 다음카페인데 카페란 서로가 이야기하는 것이고, 재미있게 창의적으로 이끌어가야 하는 것이니 다음은 스토리텔링회사"라고 그는 분석했다. 그는 최근 성장률에서 다음을 제친 포털사이트 NHN의 직원이 350명으로 "그 중 50명이 일본에 있어 상사 주재원보다도 많다"며 "문화산업의 성장세는 무궁무진하다"고 들려준다. 이 때문에 이니시스는 아예 직원들의 창의력을 북돋우기 위해 모든 직원들에게 다달이 영화표 2장을 주고 있다는 것. 그는 앞으로 거래선들한테는 예술의전당 회원권을 선물하겠다고 이 자리에서 약속했다.

박성용 금호그룹 명예회장의 권유로 강의를 듣게 된 오남수(55) 금호그룹 경영전략본부 사장은 "문화가 상품 생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 기업도 기업 이미지가 성패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문화를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문화가 기업의 경쟁력을 향상시킨다는 것은 이제 논의가 끝난 사항이라는 것이다.

한편 이강숙(67) 예종 석좌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삶이란 직업시간과 여가시간으로 나뉜다. 성공한 사람일수록 직업시간이 많다. 그러나 삶에서 돈이나 직업은 수단일 뿐 목적이 될 수 없다. 문화가 산업의 경쟁력을 높여주기에 배운다는 이야기는 결국 문화·예술을 사용하는 것이지 진정한 여가시간으로 즐기는 것이 아니다. 한번쯤은 넋과 대화하고 혼과 대화할 수 있는 예술 자체를 만나보라." 경영자들이 강좌를 듣는 진짜 목적은 아마도 이것일지도 모른다.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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