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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숲 이야기/ 제주 돈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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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숲 이야기/ 제주 돈내코

입력
2003.04.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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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섬의 한복판에 있는 한라산은 그 자락이 오름과 오름으로 이어져 중산간을 지나 해안까지 닫는다. 탐라지에 보면 한라산은 '은하를 품어 안은 산'으로, 그 시선이 섬을 넘어 하늘을 향해 있어 제주목사 이원진이 1653년에 한라산이라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제주에는 우리나라에 분포하는 식물 중 절반이 넘는 1800여종이 살고 있으며, 각종 동물과 미생물도 다양해 숲의 내면이 더욱 풍요롭다. 한라산 정상부에서 발원하는 효돈천은 원래 직선상으로 서귀포 중심부를 향해 이어져 오다가 미악산의 화산 분출로 단절돼 현재 모습의 돈내코 계곡을 잉태했다고 한다.

돈내코라는 이름이 붙게 된 내력은 두가지. 하나는 멧돼지(돗)가 들판에서 놀다 물을 먹으러 왔던 내(川)의 길목(코)이라는 돗내코에서 유래했고, 또 하나는 계곡의 동서쪽 주위가 숲으로 울창하게 우거져 높은 하늘만 보이는 산 어귀에 있는 냇가라는 뜻이라고 하다.

돈내코 계곡의 숲은 생태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해 천연보존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한라산을 배경으로 물과 숲, 크고 작은 바위들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 우리나라 상록 활엽수림 중 규모나 가치에서 최고를 자랑하는 곳이다.

이 지역은 제주에서 비가 가장 많이 오면서도 일조량이 풍부하다. 다른 곳은 해발 150m쯤 되는 곳에서 용천수가 나오지만 여기는 해발 300m나 되는 높은 곳에서부터 용천수가 솟아난다. 그 물이 계곡을 따라 흘러 내려가며 주변의 습도를 높여 지금과 같은 울창한 상록 활엽수 숲이 형성된 것이다. 효돈천 주변의 상록 활엽수림은 과거 제주 4.3사건 때 큰나무들이 대부분 베어지거나 불에 타 현재의 숲은 그 후 다시 자란 것이다. 현재 구실잣밤나무, 종가시, 붉가시, 아왜나무, 후피향나무, 팽나무, 동백나무, 녹나무 등이 서식하고 있으며 여기서 열리는 열매들은 다람쥐같은 야생동물들의 좋은 먹이감이다. 원시적 형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지금까지 내려온 솔잎난과 멸종위기 야생식물 제1호인 제주한란도 자란다.

돈내코를 비롯하여 용천수가 많이 솟는 효돈천 주변에는 크고 작은 폭포와 소(沼)가 많이 있다. 위쪽에 있다고 해서 윗소, 길게 생겨서 긴소, 개가 빠졌다고 해서 개소 등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소가 있으며 예기(藝妓)라는 한 기생의 한스러움을 간직한 예기소(藝妓沼)도 있다. 말사육 점검을 위해 조정에서 관리가 내려와 점마를 끝마치고 나면 이들을 위한 향연이 절벽과 폭포가 어우러진 곳에서 열렸는데, 기생 예기가 절벽 사이를 가로지르는 밧줄을 타고 건너다 추락해 이곳을 예기소라 하였으며 그 후부터는 그런 향연이 금지 되었다고 한다.

돈내코 계곡의 풍부한 물은 계곡 곳곳에 폭포를 빚어내어 그 진가를 더한다. 한여름에도 얼음같이 차고 맑은 물이 흘러 주변 사람들이 고된 농사일로 지친 몸을 이곳 폭포에서 물맞이로 풀었고 특히 음력 칠월 보름날에는 닭을 삶아 먹어가며 물을 맞고 따뜻한 바위에 드러누워 몸을 말리기도 했다.

화산암 지대의 땅속을 거쳐 나오는 맑은 물, 특히 돈내코 계곡 여기저기에서 용출하는 풍부한 물은 이 지역에 울창한 상록 활엽수 숲을 만들어 지금과 같이 번성할 수 있게했다. 이런 숲의 내면은 풍요롭고 생물종이 매우 다양해 우리뿐만 아니라 후손들에게도 넘겨주어야 할 중요한 자산이다.

/정헌관·임업연구원 박사 hgchung2095@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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