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 문제가 북한의 다자대화 수용 가능성 시사, 북미간의 물밑 접촉 재개설 등으로 해결에 상당한 탄력을 받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 이해 당사국인 북미 양국과 주변국이 실제로 대화를 시작하고 해법을 찾아 내기까지는 넘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북한의 일보 후퇴로 일단 다자대화 형식이 급부상했지만, 북한 체제보장 문제를 포함한 핵 문제 해결 방법 등 내용 면에서는 북미간 견해차가 여전히 크기 때문이다.정부 고위당국자는 15일 "북한이 후속 행동을 취하지 않고 있는데다, 미국의 입장 또한 실질적 측면에서 과거와 차이가 없다"면서 "다만 북한이 미국 주도의 대화 방식에 호응할 기미를 보임으로써 대화 분위기가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며칠 더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는 필립 리커 미 국무부 부대변인의 언급 등을 감안하면, 현 상황은 지난해 10월 이후 사실상 처음으로 북미 양국 모두 대화 가능성을 타진하는 '떠보기' 단계인 것으로 관측된다.
사실 북미 양국은 대화의 지향점이 다른 만큼 출발점 또한 다르게 상정하고 있다. 북한은 다자 대화를 수용하면서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포기를 사실상 전제조건으로 내세웠다. 이는 북한이 최소한 미국과의 실질적인 대화를 보장 받은 다음에야 다자대화에 응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가 지금껏 클린턴 행정부의 북미협상을 강하게 비판해온 점을 감안하면, 북한이 추구하는 '다자 속 양자(兩者)'틀을 수용할 지는 불투명하다. 미국은 또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고 밝히는 등 외교적 해결의 청신호를 잇따라 보내고 있지만, 그렇다고 북한의 선(先) 핵 포기 등 대화개시의 조건마저 포기하진 않은 것 같다.
대화가 시작되더라도 북미 양국은 이번 사태의 시발점인 북한의 농축우라늄 핵 개발 시인 문제를 어떤 식으로든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래야 최소한 지난해 10월 이전, 즉 제네바 합의 단계로 사태를 복원, 본격적으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및 체제보장 문제 등을 논의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미국은 북한이 이미 핵 개발을 시인했기 때문에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해체해야 한다는 완고한 입장인 반면, 북한은 "그런 계획은 애초부터 없었다"며 핵 개발은 물론이고 핵 개발 시인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북미 간 본격적인 기 싸움을 앞두고 우리 정부는 사태를 악화하지 않으면서 조기에 대화가 개시되도록 여건을 조성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이달 중 서울에서 열릴 것으로 보이는 한미일 3국의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 회의도 북미간 입장차 타개 방법을 집중 논의할 전망이다. 정부 당국자는 "북미 모두 융통성을 가져야 대화가 시작될 수 있다"면서 "무엇보다 미국이 대화 개시 쪽으로 정책방향을 잡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동준기자 d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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