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마신지 10여년이 됩니다. 물론 일반적인 차가 아니라 녹차(綠茶)를의미합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입니다. 감히 올려다볼 수도없는 대선배가 차생활을 권했습니다. 1인용 찻잔과 세작 한 통을 선물로주면서 말이죠. 권한 것이 아니라 완전히 명령이었습니다.그러나 솔직히 그 당시에는 별로였습니다. 기자가 한가하게 차생활을 즐기라고?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었죠. 신발에서 고무 타는 냄새가 날정도로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초년병 기자가 찻잔을 책상 위에 올려놓는것 자체 만으로도 ‘군기 빠진 짓’으로 비난받기 십상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부담스러웠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고급차의 가격은 상상을뛰어넘습니다. 중요한 이유가 또 있습니다. 맛을 알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향기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냥 밍밍한 나뭇잎 우려낸 물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지엄한 선배의 명을 거역할 수는 없었습니다. 선배가 볼 때마다 열심히 차를 만들어 마시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약을 먹는 기분이었다고나할까요. 마침내 선배에게 받은 차 한 통을 다 비웠고, 마치 숙제를 마친아이처럼 마음이 개운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차가 없으니 허전했습니다. 입에 가시가 돋는 기분이랄까요. 결국 큰 돈을 들여 선물 받은 것과 같은 차를 한통 샀습니다. 그 때 느꼈습니다. 은근한 것이 자극적인 것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말이죠. 이제는 책상 위에 찻잔이 아니라 아예 다기 세트를 올려놓고 삽니다. 책상 위가 거의 찻집 수준입니다.
차의 장점을 모두 망라하기는 어렵습니다. 한 가지만 꼽는다면 여유로운마음입니다. 다구를 정리하고 맑은 물을 끓이고, 정성껏 차를 우려내기까지. 바쁜 일상 속에서 한 숨 돌리는 여유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시간과 돈을 투자할 가치가 있습니다.
하동의 차밭 앞에 섰습니다. 차밭은 눈으로만 느껴지지 않습니다. 향기와맛이 이미 입과 코를 적십니다. 그리고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차밭 여행은이렇게 오감이 모두 즐겁습니다. 단, 차의 매력을 아는 이들에게만 말이죠.
좋은 차가 나기 시작하는 계절, 차밭에 나섰다면 구경만 할 것이 아니라입과 가슴으로도 차의 향기를 담아 오시기 바랍니다.
권오현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