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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수리 75년 외길 "은퇴 아직 멀었지"/93세 이원삼씨 기능대회 최고령 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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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수리 75년 외길 "은퇴 아직 멀었지"/93세 이원삼씨 기능대회 최고령 출전

입력
2003.04.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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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수리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직업으로 알고 살아왔어. 이젠 눈 감고도 어떤 시계든 척척 고칠 수 있지."75년을 한결같이 시계 수리를 천직으로 여겨온 이원삼(93·경기 성남시 신흥동)옹은 15일 색다른 이벤트를 앞두고 들뜬 표정이었다. 이 옹은 16∼22일 열리는 2003년도 지방기능경기대회의 시계수리 직종에 출전한다. 7,448명 중 최고령 참가자다. 20대, 30대 손주뻘 젊은이들과 기술을 겨루는데 긴장보다는 즐거운 기대가 앞선단다. "2001년에 처음 출전했었는데 치통 때문에 제대로 실력발휘를 못했어. 이번에는 제대로 실력을 발휘할 거야."

서울 남대문시장 시계 골목에서 '남일사'라는 간판을 걸고 45년이나 터줏대감 노릇을 해온 그다. 시계수리업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박사님'으로 통한다. 시계수리 일감이 줄어든 요즘은 다른 수리업체들이 고치지 못한 시계들이 그의 몫이다. 수리에 필요한 시계 부품을 직접 제작하기도 한다. 5년 전엔 한 미국인 골동품 수집가가 수소문 끝에 230년 된 시계 2점을 들고 이 옹을 찾아올 정도로 기술은 소문나있다.

함남 단천이 고향인 이 옹이 시계수리업에 뛰어든 때는 18세 되던 1928년.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자전거 수리 등 닥치는 대로 일했던 그는 "시계수리 하는 일이 깔끔해 보여 무작정 책을 사다 시계수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6개월 만에 수리공으로 취직했고, '최고의 기술자가 되겠다'는 생각에 24살 때 청진으로, 또 6년 뒤엔 개업을 하기 위해 만주로 건너갔다. 해방 후 청진을 거쳐 49년 서울 충무로에서 개업을 했고, 한국전쟁동안 부산에 피난을 갔다 58년 남대문시장에 자리를 잡았다.

젊어서 만주에 있을 당시 늑막염에 걸렸을 때는 의사가 팔을 잘라야 산다고 했지만 "그러면 시계수리를 못하지 않느냐"며 막무가내로 버텼다. "70년 넘게 한 순간도 시계수리말고 다른 일을 한 적이 없어. 내 손을 거쳐간 시계가 몇 갠지 셀 수도 없어. "70년대 초반만 해도 하루 40여 개씩 시계 부품을 제작하며 쏠쏠한 벌이를 했던 그였지만 디지털시계가 나오면서 일감은 확 줄었다. 남대문 시계골목에도 비슷한 연배의 동료들은 모두 떠나고 이제는 30대, 40대 후배들 차지가 됐다. 그래도 그는 "내 나이가 93세라면 모두가 놀라지만 아직 은퇴하려면 멀었다"며 자신 있어 했다. 백내장 수술로 눈이 좀 나빠지긴 했지만 시계수리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단다. "늙은이가 대회에 출전한 것은 상을 타고 싶어서가 아니야. 후배들에게 참다운 기술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을 뿐이야."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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