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강원 홍천군 육군 화랑부대 신병교육대 화생방 교장.쾅∼! 문을 박차고 10명의 훈련병이 튀어나온다. 방독면을 썼다지만 최루가스의 위력은 허파까지 후벼 파는 통증으로 각인된다. 고통을 달랠 새도 없이 뒤통수를 때리는 교관의 고함소리 "튀어!" 그런데 유독 두 신병은 방독면도 쓰지 않은 채 눈물 콧물 범벅이다. "미안해, 조금만 참아." 뒤에 선 병사가 동료의 어깨를 다독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인 경덕(21)이가 씌워준 영호(21)의 방독면이 잘못돼 가스가 샜고, 영호가 아예 방독면을 벗어들자 경덕이도 함께 벗어 의리를 챙긴 것이었다. 조교의 눈을 피해 엎치락뒤치락 하는 둘은 형제처럼 얼굴까지 닮아 있었다. 아직 몸과 군복이 따로 노는 21살 앳된 청년들은 올해 처음 시행된 '동반입대 복무병'이다.
"친구 따라 군에 왔어요."
잔뜩 얼어있어야 할 훈련장 분위기가 봄눈 녹듯 훈훈한 것은 눈만 보면 속내를 알 수 있는 친구 형제가 바로 곁에 있기 때문. 방독면을 정성스레 씌워주고 힘들어 하는 친구에게 은근히 농담을 던지는 모습은 예전 훈련소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다.
화랑부대 신병교육대 2중대 220명 중 106명(53쌍)이 형제 친척 친구 등 마음이 맞는 한 사람과 함께 입대한 동반입대 복무병이다. 1월에 신청해 4월1일 입대한 동반입대 복무병들은 제대할 때까지 함께 생활하게 된다. 두렵고 힘든 군 생활에 큰 버팀목을 지닌 셈이다. 중대장 김대중 대위는 "긴장이 심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데 서로 아는 사이라 적응도 빠르고 상관에게 속내를 털어놓지 않더라도 친구를 통해 신상관리를 할 수 있어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충남 연기군에서 온 항수(21)와 송식(21)이도 초등학교 지기다. "학교 게시판에서 동반입대 복무 소식을 보고 의기투합했다"는 둘은 "친구 따라 강남 가는 대신 군에 왔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송식이는 "부모님께서 마냥 안쓰러워 하셨는데 항수랑 함께 간다고 하니까 마음을 놓으셨다"고 말했다. 교관과 조교를 헷갈리게 하는 쌍둥이 형제 홍성환(21) 성정 형제도 함께 군에 왔다. 동생 성정이는 "형이 늘 곁에 있어서 큰 힘이 된다"고 했다.
가스실 앞에서 대기하던 용욱(21)이가 갑자기 손을 번쩍 든다. "방독면 벗고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곁에 있던 동반복무 친구도 거든다. "제대로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허락을 받은 두 친구는 매운 가스를 흠뻑 마신 뒤에도 계속 싱글벙글. "괜찮냐"는 질문에 "친구가 있어 용기가 납니다"라며 씩씩하게 응수한다. 교관 김충기 중위는 "잔뜩 주눅이 들어있던 예전 신병들과 달리 이번 신병들은 대담하고 자신감이 넘친다"고 했다.
"군대는 군대다워야 하는데…."
고된 하루 일과를 끝내고 저녁식사 시간. 동반입대 훈련병들의 대화는 허기진 배를 채우는 바쁜 손놀림 중에도 틈틈이 이어진다. 훈련 얘기, 친구 얘기, 간간이 비집고 드는 음담패설까지 밥보다 단 대화는 식당 안을 가득 메운다.
하지만 동반입대자들에 섞인 일반 훈련병의 '고독'은 그래서 더 진하다. 끼리끼리 어울려 시시덕거리는 틈새에 끼어 들어 보지만 아직은 서먹하다. 그들은 "솔직히 부럽고 샘도 난다"고 했다. 전남 장성에서 온 유만길(21) 훈련병은 "군에 온 이상 사내답게 어려움도 혼자 견뎌내면서 새 친구들을 사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자위하기도 했다.
보수적인 군의 특성상, 훈육자의 입장에서도 새로운 제도인 동반입대 복무에 대한 걱정이 없을 리 없다. 군대는 군대 다워야 하는 법, 분위기가 부드러운 게 무조건 좋은 건 아니기 때문이다. 훈육분대장 남윤길 분대장은 "서로 도와 훈련도 잘 받고 적극적이지만 너무 떠들어서 통제에 어려움도 있다"고 말했다. 한 장교는 "지금은 훈련병이니까 큰 문제가 없지만 나중에 고참이 돼 학연이나 지연으로 헤쳐 모이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다른 중대에 근무하는 부사관은 "안 그래도 신세대 장정들은 자유분방하고 거칠 것이 없어 지도하기가 까다로운데 동반복무가 도리어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했다.
"취침점호, 5분전!" 훈육분대장의 외침에 애인 사진을 돌려보고, 편지지를 주물럭대던 훈련병들의 동작이 빨라진다. 부동자세로 침을 삼키며 일직사관을 맞는 훈련병들. 조금 전과는 달리 내무반은 면돗날 같은 군기가 서린다. 하루 일과는 그렇게 끝나 갔다.
"이제 시작, 더 두고 보라"
"빰∼빠∼" 다음날 오전6시 기상나팔소리가 봄비에 젖은 연병장을 휘감는다. 동반입대자들은 눈 비비고 일어나 모포를 사이 좋게 개고 전투화를 챙겨준다. 오전 교육인 집총 제식훈련은 부득이하게 화랑관 실내에서 이뤄졌다. "우로 어깨총" "좌로 어깨총" 쉴새 없이 이어지는 교관의 지시에 따라 훈련병들이 "하나 둘" 열심히 동작을 맞춘다. 동작을 배우는 손놀림에 긴장이 묻어난다. 중대장 김대중 대위는 "우려와는 달리 하루가 다르게 군기가 들어간다"고 흐뭇해 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K-2 소총과 철모 등 단독군장으로 8㎞ 행군이 진행됐다. 훈련에 집중하면서도 친구를 배려하는 모습이 곳곳에 있다. 자꾸 뒤쳐지는 동료를 끌어주는 한 병사에게 "함께 온 친구냐"고 묻자 "아닙니다. 우리 모두 친구입니다"라는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동반입대 복무병들은 시나브로 함께 온 친구뿐 아니라 군에서 처음 만난 동료들도 전우로 여기고 있었다.
훈련 종료와 함께 "힘찬 함성, 5초간 발사!" 중대장의 지시에 따라 "아∼" 함성이 물 안개 가득 낀 산등성이를 돌아간다. 옛날 친구와 새로 사귄 친구 가릴 것 없이 함께 외치고 함께 구르는 사이 아직은 말하기 멋적은 '한 개비 담배도 나눠 피우는' 전우애가 훈련병들 가슴에 봄비처럼 촉촉하게 스며들고 있었다.
/홍천=글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사진 류효진기자
■입대에서 제대까지 친구·형제등과 복무
'입대에서 제대까지 함께.' 육군이 올해 도입한 동반입대 복무는 2명을 단위로 친구 친척 등과 함께 입대해 같은 부대에서 신병교육은 물론 군 복무까지 함께 할 수 있는 제도다.
동반복무 입영부대는 102·306 보충대로 제한되며 육군 1·3군 예하 사단의 신병교육대에서 교육 받게 된다. 적용 특기 역시 일반 보병과 야전 포병으로 제한한다. 동반입대 복무병들은 향토사단은 대대 이하, 전방 상비사단은 중대 이하의 같은 부대 '동일생활권'에 배치돼 함께 근무한다. 지원은 매월 1∼25일 인터넷으로만 가능하다. 입영 희망 3개월 전 병무청 홈페이지(www.mma.go.kr)의 '육군병 모집'란을 클릭한 뒤 동반입대병 지원서를 작성해 신청하면 된다. 전과 등 결격 사유가 있으면 제외된다. 지원한 다음달 30일 전후로 병무청ARS나 휴대폰 문자메시지, 이메일 등으로 합격자를 발표한다.
첫 모집이었던 1월의 경우 이틀 사이에 3,144명 모집에 3,507명(112%)이 지원해 조기 마감됐다. 4월 모집에는 3,296명의 접수가 5시간 만에 끝나는 등 입대 희망자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
/고찬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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