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전쟁이 예상외로 일찍 끝나감에 따라 이번 전쟁이 향후 국제질서에 미칠 파장에 대한 논의가 일어나고 있다. 대부분의 견해는 미국이 군사적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전세계에 더욱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데 모아지고 있다. 물론 이와 반대로 미국이 이번 전쟁의 강행으로 실추된 국제적 이미지 회복을 위해 강경노선보다는 유화노선으로 회귀할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그러나 승전 후 미국이 당면하는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9·11 테러 이후 공포에 시달려온 미국 시민들이 이제 보다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게 되었는가이다. 이 문제는 이번 전쟁으로 테러 집단과 테러 지원 국가들과의 연계고리가 파괴되었는지의 여부에 달려있다. 이것은 특히 전쟁 이후 중동평화안의 수립, 이라크의 재건 등과 같은 근본적인 테러방지책 구축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예컨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관계가 미국이 기대하는 대로 진척되지 않거나 중소 규모의 테러사태가 재발할 경우 이라크전쟁의 효과는 물론 미국의 신국제질서 구상은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아울러 이라크전쟁의 또 다른 명분인 '대량살상무기의 위협에 대한 예방전쟁'이라는 개념도, 만약 미국이 이라크 내에서 대량살상무기를 찾아내지 못할 경우 국제사회의 지지를 이끌어내는데 실패할 것이다.
이처럼 전쟁 이후 새로운 국제질서에 대한 논의는 기본적으로 많은 불확실성을 안고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새로운 형태의 위협에 대한 전통적 민족국가단위에 기초한 유엔의 대응력이 약화되었음을 빌미로 내세워 새로운 전쟁 개념과 이의 국제적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전후 중동문제 등을 홀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이번 전쟁에 반대한 프랑스 러시아 독일 등과 새로운 타협점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미국의 이라크전쟁 승리가 아직 그 목적을 완전히 달성했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에게 제기되는 중요한 문제는, 미국이 압도적인 군사력을 바탕으로 모든 상황을 주도하려는 소위 '이라크전 모형'의 다른 지역이나 세계적 차원으로의 확산 시도이다.
물론 국경이나 국적이 없는 테러집단, 또한 이에 연계된 국가에 대한 전쟁 모형을 여타 지역과 국가에 연장하여 적용하기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모든 국가나 지역이 미국과 같은 수준의 테러 위협을 공유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테러 이외의 문제들은 여전히 전통적인 국가 단위의 것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은 이라크전쟁에서 과시한 군사적 위력을 바탕으로 협상 등의 상황에서 고압적인 자세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북한 핵 문제를 대하는 자세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이제 자국의 군사적 위력에 북한은 물론 중국 역시 강하게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판단해 다자의 틀 속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 다시 말해 북한 핵시설의 해체와 이를 보장할 투명한 방법의 확보 등을 강력히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의미에서 미국은 북한 핵문제의 해결을 위해 이라크전과 달리 타협을 통한 해법도 동시에 제시함으로써 이라크 전후 국제질서의 성격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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