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4월15일 영국 셰필드 스타디움을 가득 채운 5만4,000 명의 관중들은 리버풀과 노팅검 사이의 경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경기가 시작되기 직전 리버풀 골대 뒤의 스탠드에 앉아 있던 관객들이 갑자기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서로를 밀쳐내고 때리고 짓밟는 가운데 사망자가 속출했다. 팬들의 난동에 대비해 관중석과 운동장 사이에 세워놓은 철망이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힘이 약한 노인들과 어린이들이 이 철망에 끼여 참혹하게 죽어간 것이다. 경기는 시작된 지 6분만에 중단됐다. 이 난동으로 93명이 죽고 180여명이 다쳤다.축구장에서 난동을 부리는 사람들을 흔히 훌리건이라고 부른다. 1960년대 초 영국 보수당 정권 아래서 빈부 격차가 커지면서 빈민층은 사회적 울분을 축구장에서 난동의 형태로 폭발시키는 일이 잦았는데, 이런 난동 팬들이 훌리건의 시작이다. 1963년 리버풀에서 더콥(The Kop)이라는 조직적 응원단이 등장하면서 훌리건의 폭력은 규모도 커지고 과격해지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는 켄싱턴 앤드 첼시의 팬들로 이뤄진 헤드헌터스(Headhunters), 웨스트햄의 팬들로 이뤄진 인터시티펌(Inter City Firm) 등 이른바 슈퍼훌리건 집단들이 잇따라 생겨나 악명을 떨치면서 훌리건은 영국 축구의 한 상징이 되었다.
축구가 커다란 인기를 끌고 있는 유럽 대륙과 남아메리카에도 훌리건이 생기기 시작했다. 훌리건들은 1980년대 이후 원정 응원을 다니면서 홈 팬들을 공격하고 경기장 근처 거리를 활보하며 기물을 부숨으로써 신문의 스포츠면이 아닌 사회면을 장식했다. 지난해 월드컵 때 붉은 악마가 보여준 절제는 조직적이고 열정적인 응원단이 꼭 훌리건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상적으로 보여주었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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