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ES'. 뜻을 알 수 없는 영어의 약자와 '종의 묵시록'이라는 단어가 어둡고 묵직한 느낌을 준다. 뜻 모를 두려움을 안겨 준다. 처음 프로그램을 접했을 때의 느낌이다. '종의 묵시록'이 방송되기 직전 많은 신문에서 프로그램을 알리는 글을 실었다. 제목이 주는 중압감과 프로그램에 대한 많은 안내 글들이 '종의 묵시록'을 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압박감을 가했다.반드시 보아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으로 방송 시간을 기다렸다. 4월10일 밤 10시40분이 되었고 채널을 EBS에 고정시켰다. 방송의 시작은 밀렵된 원숭이들이 철창에 갇혀 이리저리 눈망울을 굴리는 모습과 밀렵꾼이 담배 연기를 내뿜는 장면이었다. 두 개체의 모습에서 뜻 모를 '슬픔과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이 느낌은 방송이 끝날 때까지 내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1부 '밀렵' 편에서는 밀렵의 현장과 함께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동물 시장인 '프라무카'의 동물 밀거래 현장을 생생하게 고발했다. 특히 동물들이 당하는 수난이 몸서리쳐질 만큼 사실 그대로 보여져 놀랍고 슬픈 감정을 억제하기 힘들었다.
애완용으로 길러지기 위해 생으로 이빨이 뽑히는 원숭이, 웅담을 얻기 위해 새끼 곰을 죽이는 장면, 사지를 묶인 채 쓸개즙을 갈취 당하는 곰의 슬픈 듯한 눈, 위험을 알고 본능적으로 돌돌 몸을 만 천산갑을 억지로 펴서 배를 갈라 피를 뽑는 장면 등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1부는 동물에 대한 인간의 잔인한 학대를 충격적 현장 고발로 생생하게 전했다. 이 고발을 통해 단순히 사육과 보신을 위해 야생 동물을 찾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릴 수 있었다. 자신들이 원하는 야생 동물이 어떤 경로를 통해, 또 어떤 고통을 거쳐 자신에게 올 수 있었는지 알게 된 때문이다.
2부 '사지 않으면 잡지 않는다'는 CITES의 기본 취지를 알리고 CITES 한국 관련 법안의 현실과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종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인 CITES를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었던 것은 프로그램의 큰 소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협약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야생 동물의 수난이 계속되고 있고 밀렵을 담당하고 있는 원주민들은 이런 협약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생존을 위해 밀렵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마음을 짓누른다. 많은 동물들이 인간에 의해 잔인하게 죽어 가지만 그들을 죽이는 사람들만을 비난할 수도 없는 상황 자체도 답답함을 더한다.
하지만 대안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듯하다. 2부의 제목처럼 '사지 않으면 잡지도 않을 것이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음을 알기에 한편으로는 참으로 어려운 대안이 아닐 수 없다.
공존해야 될 개체가 보신과 사육을 위해 다른 개체를 무수히 잡아들인다면 결국 그 개체도 종말을 맞을 것이 분명하기에 'CITES―종의 묵시록'을 보면서 슬프고 안타까운 심정은 더욱 깊어졌다.
/맹숙영·방송모니터
(www.goodmonitor.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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