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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록의 대부 신중현 (43) 미군 무대가 남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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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록의 대부 신중현 (43) 미군 무대가 남긴 것들

입력
2003.04.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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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12월 대마초 사건으로 구속돼 이듬해 4월까지 옥살이를 하고 나오니 세상은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사람들은 박정희 정권의 눈에 벗어 난 나를 아는 체도 하지 않았다.갑갑한 마음에 더 이상 방안에 틀어박혀 있을 수 없어 바깥 바람을 쐬러 나갔던 어느날이었다. 커다란 나이트 클럽이 딸려 있어 당시 음악 관계자들의 아지트 이다시피 했던 충무로 퍼시픽 호텔 커피숍으로 갔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위안이나 좀 받을까 하는 마음에서 였다. 그러나 너무 순진하게 생각한 게 실수였다. 혼자서 창가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는데, "신중현은 이제 끝났어!"라며 대놓고 소리 지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혼자 앉아 있는 내 모습을 언뜻 봤던 모양이었다.

당시 인기 깨나 모으던 가수, 음반사 사장 등이 모여 무슨 이야기를 하는 자리인 듯 했다. 슬쩍 보니 언젠가 한 번 스친 적이 있는 연예계 관련 심의 조정관 등 정보부와 문공부 관련 직원들도 합석한 모습도 눈에 들어 왔다. 대중문화와 정권이 담합하는 현장이라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 자리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대중 가요란 기본적으로 대중이 좋아해야 하는데, 정권이 나서 억지로 한 방향으로 끌어가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대중 음악의 자연스런 흐름을 제어하는 것은 문화를 죽이는 일이나 다름없다. 이런 진리를 나는 미군무대에서 터득했다.

이것은 또 지금까지 내 음악 세계 전반을 지배한 원칙이기도 했다. 즉, 대중 음악은 '단순한 비트 속에 현대성을 담아 내는 것'이라는 점이다. 여기엔 상업성도 작용한다. 예를 들어 미국 민요인 '홍하의 골짜기(Red River Valley)' 같은 곡을 록으로 만들어 히트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상업성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케이스다.

나의 음악적 요소에는 미국 음악의 대중성과 영국 음악의 예술성이 뒤섞여 있다. 내 나름의 한국적 창작도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그 관건이 되는 것이 바로 '개성'이다. 미 8군에서 음악을 할 때마다 감탄한 것이지만, 미국 음악 최대의 매력이라면 상업성이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유럽의 팝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록 음악이 유신정권에 의해 '퇴폐'라는 오명을 쓰고 언더그라운드로 내몰렸던 일은 언제 생각해도 마음이 아프다. 록 음악은 지하의 작은 카페에서 연주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젊은이들을 보면 가슴이 턱턱 막혀 왔다. 나의 경우, 미 8군의 서비스 클럽 등 세계적 규모를 갖춘 곳에서 음악을 했기 때문에 공연이라 하면 스케일이 큰 무대를 당연히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젊은 친구들은 록 음악을 협소한 공간과 동일시하거나 관제 행사의 들러리 정도로 생각하는 것을 보니 답답하고 화도 났다.

개성이란 문제도 그렇다. 미군 무대의 경험 덕분에, 나는 이후 가수가 되고 싶다며 사무실을 찾아 온 사람들의 개성을 어떻게 하면 최대화할 수 있는가를 한 눈에 알게 됐다. 그러나 본인은 그것을 알 수 없다. 몇 곡을 시험적으로 들어 보면, 그 사람의 목소리와 생김새에 따라 가장 잘 어울리는 색깔이 보인다. 이 때, 내가 생각한 대로 끌고 가는 것이 중요하다. 독재자니 하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지만, 내가 곡을 쓴 사람이므로 나 자신이 주체가 됐을 때 가장 훌륭한 작품이 나왔다. 대표적인 예가 펄 씨스터즈, 김정미, 초기의 김추자라고 믿는다. 그들은 곡으로 출세하겠다는 마음보다, 설사 꼭두각시가 될 지언정 나를 따르고 배우겠다는 의지로 충만해 있었다.

정반대의 예가 있다면 장현처럼 곡만 받겠다는 경우인데, 어떻게 자신도 모르는 새 스타가 될 수도 있겠지만 정작 문제는 그 이후이다. 자신의 히트곡은 옛 노래가 돼 버리고, 대중은 또 다른 것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자신이 해야 할 바를 찾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신중현 사단'이 그런 식으로 만들어졌다. 독단적이라는 비난이 심하게 가해진다 하더라도 양보할 수 없었다. 그 같은 확신이 생겨난 것 역시 미군 무대의 경험 덕분이다. 가수 희망자가 기성 가수를 똑같이 모방하면 아무리 잘 해도 후한 점수를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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