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후반인 K씨는 가래와 기침 증상이 심해 처음엔 감기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가 점점 심해져 병원을 찾았다가 천식 진단을 받았다. 알레르기 항원 검사결과 집안에서 키우는 개때문이라는 진단을 받고 면역요법 치료를 한달 이상 받았지만 증세가 나아지지 않았던 그는 혹시나 싶어 다른 의사에게 갔다 만성폐쇄성 폐질환(COPD)이라는 진단을 받고 큰 충격을 받았다. 엉뚱하게 자식처럼 아끼던 개를 없애버릴 뻔했던 그는 의사의 오진에 너무 화가 났다.노령화 현상이 뚜렷해지면서, 만성폐쇄성 폐질환 (COPD:Chronic obstructive pulmonary disease)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정확한 국내 통계는 없지만, 우리보다 20∼30년 앞선 질병발생 패턴을 보이고 있는 미국에서는 최근 만성폐쇄성폐질환의 발병률이 30년새 170%이상 증가했다. 미국에서는 사망원인 4위를 차지할 정도로 흔한 병이다. 사망원인 'Big 3'를 차지했던 심장마비, 뇌졸중, 기타 심혈관계 질환은 줄어들고 있는 추세인데 비해, COPD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료계는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처럼 흔한 병인데도 COPD가 낯설게 다가오는 이유는 의사들의 오진도 잦고, 심지어 의사들이 알면서도 환자에게 병명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S대병원의 K교수는 "만성폐쇄성 폐질환이란 병명이 일반인에게 익숙하지 않아, 환자들을 이해시키려면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일부 의사들은 환자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그냥 천식이라고 이야기해준다"고 말했다. 적절한 치료 여부와는 관계없이, 자신의 병명조차 모르는 채 진료를 받고 있는 환자가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환자의 3분의 2 가량이 자신의 병명을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사마다 진단 내리는 병명이 다른 데는 환자 입장에선 오진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COPD라는 질병의 특성 때문이다. COPD와 천식은 엄연히 다른 병이지만, 천식과 COPD환자는 상당부분 겹쳐 있다. 호흡기 전문의들은 COPD환자의 50%가 천식 증상을 가지고 있으며, 천식환자(45세 이상 노인성 천식)의 70∼80%가 COPD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COPD환자가 천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고 해서 오진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 CODP는 CT촬영을 통해 진단을 내리는데, CT판독 경험이 부족할 경우 정확한 진단을 놓치는 의사도 많다.
만성폐쇄성 폐질환은 한마디로 폐의 노화현상이다. 나이가 들면서 쉴새없이 수축과 확장을 거듭하던 폐가 탄력을 잃고 수축력이 약화되면서 숨쉴 수 있는 능력을 잃어가는 것이다. COPD는 크게 만성기관지염과 폐기종으로 분류할 수 있다. 염증으로 기도가 좁아져서 호흡곤란이 나타나는 증세를 만성기관지염, 폐포(허파꽈리)가 늘어나면서 폐포벽이 파괴돼 기도가 막히는 증세를 폐기종이라 부른다. 만성기관지염과 폐기종은 증세가 함께 동반하는 경우가 많고 치료법도 비슷해 의사들은 COPD라고 총칭한다.
COPD는 천식보다 무서운 병이다. 천식 환자의 폐기능은 돌이킬 수 있지만 만성폐쇄성폐질환 환자의 한번 좁아진 기도는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특징적 증상은 호흡곤란이다. 초기에는 평상시 증상을 느끼지 못하다 운동을 할 때 호흡곤란을 느끼게 되는데, 심한 환자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호흡곤란으로 헐떡이게 된다.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기 시작하고 특별한 이유없이 기침을 하게 된다. 호흡곤란이 심해지면 15㎝앞에 있는 촛불도 입으로 불어서 끄기 힘들게 된다. 안타깝게도 증상을 느껴 병원을 찾았을 때는 이미 상당히 병이 진행된 경우다. 만성폐쇄성 폐질환이 심각하게 진행될 경우 기도 폐쇄나 감염 등으로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만성기관지염 환자는 호흡곤란 외에 기침과 객담도 보인다.
COPD의 원인은 흡연, 대기오염, 유전적 요인, 직업적 유해물질 노출 등 다양하지만, 의사들은 가장 큰 원인은 흡연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미국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COPD로 사망한 환자의 89∼90%가 흡연자였다.
치료법은 기관지 확장제 투여이다. 항콜린제 부신피질 스테로이드등 두서너 종류의 확장제를 병합해 사용한다. 증세가 심해지면 고압산소통이나 휴대용산소통을 이용해 산소를 공급받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 COPD는 퇴행성관절염처럼 수년 내지 수십년에 걸쳐서 서서히 진행되는 병"이라면서 "40대이상으로, 현재 담배를 끊었다해도 조금만 힘든 일을 해도 숨이 차고 가래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기침을 한다면 반드시 전문의의 진단을 받아보라"고 말했다.
/송영주 편집위원 yj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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