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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대통령의 출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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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대통령의 출사표

입력
2003.04.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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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루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나선 이의 심정과 우국의 충정을 담은 글로 제갈 공명의 출사표(出師表)에 버금가는 문장을 찾기는 쉽지 않다.중국 삼국시대 촉(蜀)나라의 재상 제갈 공명은 위(魏)나라를 치러 떠나는 날, 황제 유선(劉禪) 앞에 나아가 눈물을 흘리며 출사표를 올렸다. "출사표를 읽고 울지 않으면 충신이 아니다"라는 송(宋)나라 시인 소동파(蘇東坡)의 감탄처럼, 이 글은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는 진정과 충성심이 절절이 묻어나는 고금의 명문이다.

그러나 사람을 감동시키는 출사표의 힘은 단순히 문장의 아름다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길을 떠나는 사람의 간절한 마음과 순수한 충정, 진정한 애국심이 시대를 넘어 가슴으로 전해져 오기 때문일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국민들 앞에 출사표를 올릴 예정이다. 그는 다음 달 11일부터 17일까지 미국을 방문한다. 현안의 핵심은 북한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다.

북한 핵은 어느 새 한국 대외신인도의 최대 변수가 됐다. 북한의 플루토늄재처리나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의 도발행위 여부에 따라 한국의 신용등급은 춤을 추게 돼 있다. '신용등급 조정의 키를 쥐고 있는 곳은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가 아니라 북한'이라는 우스개 소리도 예사로 들리지 않는 상황이다. 불안감의 징후는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우량주를 대거 내다 파는 '셀 코리아(Sell Korea)'행태는 심각한 수준이다. 이들이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기가 증가할 것을 우려, 손 털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내 경제도 심상치 않다. 한국은행에 이어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올해 경제성장률 예상치를 4% 초반으로 대폭 낮췄다. 급속한 내수 위축과 금융 시장 불안 등이 겹쳐 경기는 빠르게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다. 정상회담에서 우리 정부가 북핵 문제 해결에 미국과 인식 차가 없음을 국내외에 과시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안보 뿐 아니라 경제에 드리워진 '먹구름'을 걷어내고 국내외 투자자들이 안심할 수 있는 메시지를 보내달라는 것이 시장의 주문인 것이다.

기업인들은 노 대통령이 방미기간 중 세일즈 외교에 주력하고 시장주의자의 이미지를 높여주길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통령이 세일즈 외교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금융시장을 쥐고 있는 뉴욕 월가의 '큰 손' 들과 주요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를 만나 한국의 경제정책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려는 움직임은 어디에도 없다. 5박6일 방미 기간 중 예정된 교민 간담회만 해도 3차례다. 지금은 교민들과 만나 '덕담'이나 나눌 정도로 한가한 때가 아니다.

미국의 영향력 있는 경제인들에게 비즈니스 마인드를 가진 CEO대통령의 이미지를 심지 못하면 방미 효과는 절반에 그칠 뿐이다. 교민 간담회를 줄이더라도 한국에 관심이 많은 미국의 대기업 CEO를 조찬이나 오찬을 통해 만나는 적극성을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

국민들이 원하고 있는 것은 경제 대통령의 모습이다. 한국인 10명 중 7명이 국가 최우선 과제로 경제 성장을 꼽았다는 엊그제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의 조사 결과가 이를 말해준다.

대통령이 지엽적이고 소모적인 논쟁에 매달려 시간을 낭비하기 보다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사려 깊고 충정 어린 출사표를 쓰는데 전념하기를 국민들은 바라고 있다.

이 창 민 경제부 부장대우cm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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