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수도 카불을 점령한 미국과 추종적 언론은 아프간 여인들의 전통 의상 부르카(Burka)를 전쟁 명분을 드높이는 상징 조작의 수단으로 삼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검은 천으로 가리는 부르카를 회교 원리주의집단 탈레반이 강요한 야만적 질곡의 상징으로 규정, 이를 벗어 던진 카불 여인들의 모습을 문명 세력이 안겨준 '해방'의 극적 장면으로 선전했다.국제 여론을 더러 감동시킨 이 '해방'은 그러나 실질과는 거리 먼 허구에 불과했다. 이슬람 전통 의상은 사막과 유목 생활의 극악한 생존 환경에서 건강과 정조를 지키려는 지혜가 낳은 오랜 관습이고 탈레반이 이를 새삼 강제한 것은 외세 침략과 내전으로 도탄에 빠진 사회를 정화, 혁명적 갱생으로 이끌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탈레반은 원래 무자헤딘 군벌의 부녀자 납치 등 탐학과 횡포에 맞서 봉기한 민중혁명 집단이었다.
테러 지원세력 척결을 내세운 미국의 아프간 침공은 숱한 인명을 살상하고 카불에 친미 괴뢰정권을 세우는 것으로 끝났다. 테러 원흉이라던 오사마 빈 라덴은 종적조차 찾지 못한 상태에서, 부르카를 고리 삼은 여성 해방 논리는 명분과 실질의 괴리를 숨기는 미디어 선전이었다. 여기에 동원된 미모의 카불 여인들은 일찍이 서방 문물을 맛본 극소수 상류층 출신들이었다. 미국과 결탁한 군벌이 다시 발호하는 가운데, 아프간 여인들은 전혀 변하지 않은 삶에 고통받으며 부르카를 고수하고 있다고 한다.
아프간 침공을 징검다리로 1년 여 만에 다시 이라크의 고도(古都) 바그다드를 점령한 미국과 서구 언론은 이번에도 '해방' 논리를 외쳤다. 4월9일 바그다드 중심부에서 시민 수백 명이 미군 탱크의 도움을 받아 독재자 후세인의 동상을 쓰러뜨린 것을 그 해방의 상징으로 세계 여론을 향해 선전했다. 아프간 침공을 야만과 문명의 대결로 포장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독재에 시달린 이라크 민중에게 민주의 축복을 안겼다는 논리다.
그러나 미국의 전쟁 논리를 면밀히 추적한 시각에는 이라크 해방론 또한 명백한 허구다. 미국의 당초 전쟁 명분은 대량살상무기 위협 제거였다. 이 명분은 유엔 무기사찰단이 대량살상무기의 존재를 부인하고, 유엔 안보리와 국제 여론이 전쟁 지지를 거부한 것으로 진작에 설득력을 잃었다. 그리고 무력한 이라크를 마음껏 유린, 바그다드까지 장악하고서도 대량살상무기의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함으로써 낡은 선전 주제로 전락했다. 해방 논리는 이처럼 허술한 전쟁 명분을 보강하고, 이라크 점령 통치의 정당성을 그나마 확보하려는 새로운 기만 술책인 것이다.
전쟁 내내 바그다드를 지킨 영국 인디펜던트지의 베테랑 종군기자 로버트 피스크는 동상 철거 시위가 서구 언론이 집단으로 머문 팔레스타인 호텔 앞에서 벌어진 것부터 미디어 쇼로 보았다. 시위에 앞장 선 시민 수백명은 후세인 반대 세력인 시아파 빈민들이었고, 동상 철거를 실제 주도한 것도 미군 탱크였다. 미군은 이어 이들의 무차별 약탈 행위를 방관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의도는 애써 추리할 것도 없다. 아랍권 언론은 침략을 선행으로 포장하고, 점령 통치를 합리화하려는 속셈으로 본다. 해방은 정복의 선전적 표현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이런 지적대로, 미국은 그토록 노리던 후세인 추적에는 별로 열성적이지 않은 채 21세기에 새로 획득한 뉴 프론티어, 이라크 경략에 골몰한 모습이다. 나라를 아예 세 지역으로 나눌 궁리와 함께 이스라엘 하이파로 이어진 옛 영국지배 시절의 송유관을 복구하는 등 석유 이권을 마음대로 요리할 준비만 서두르고 있다. 세상을 제국주의 시절로 되돌린 듯한 전쟁을 두고 온 나라가 참전 여부를 논란한 것 조차 참담하게 느껴지는 세월이다.
강 병 태 편집국 부국장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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