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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의 세상속으로] 서울 江南의 농사꾼 박성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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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의 세상속으로] 서울 江南의 농사꾼 박성안씨

입력
2003.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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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이라면 언뜻 무엇이 연상되는가. 빽빽한 고층빌딩, 호텔, 아파트, 첨단기업, 유행,…. 좀 삐딱한 시선을 가진 이라면 무분별한 향락과 소비가 넘쳐나는 천민 자본주의의 현장 쯤으로 매도해 버릴 수도 있을 터.어쨌든 강남은 부(富)가 모이고 욕망이 배설되는 현대 한국사회의 쇼룸과도 같은 곳이다.

그런데 그 곳에 난데없는 농사꾼이 있다. 혹시 일부 입맛 까다로운 부유층의 호사에 필요한 고급작물을 짓는 이나 화훼농은 있을 수도 있겠거니 할 지 모르겠다.

그러나 박성안(朴成安·67)씨는 벼와 채소를 키우는, 우리가 생각하는 전통적 의미의 진짜 농사꾼이다. 그의 갈라진 억센 손등에는 힘든 농사일로 찌들은 고달픈 삶의 이력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어쨌든 그는 틀림없는 서울 강남구 주민이다. 그의 논밭이 있는 지번은 강남구 세곡동 167과 율현동 165의 2, 4번지다.

물론 서울에는 그 말고도 농사꾼들이 꽤 있다. 공항 가는 길에 도심을 벗어나면서부터 시원하게 펼쳐지는 김포평야 너른 들의 상당부분이 서울 시경계 안쪽이다. 그 뿐 아니다.

뜻밖에 서울 강남지역에도 농부들이 여럿 있다. 수서와 일원동의 빼곡한 아파트 단지를 지나자마자 돌연 나타나 보이는 비닐하우스 군(群)의 주인들이다.

그러나 박씨는 이 곳에서 논농사까지 짓는 유일한 전업농(全業農)이다. 말하자면 그만이 논밭을 일구어 얻는 수확만으로 생계를 삼는 순수한 농사꾼이라는 뜻이다.

게다가 놀라지 마라. 강남구민인 그가 지난해 전국 농협 조합원 중 가장 오랫동안 땅을 지켜온 ‘최장수 영농인’으로 선정됐다.

그의 농막(農幕)은 세곡동 네거리 인접한 곳에 있다. 강남과 분당을 오가는 길에서 가로수 사이로 무심히 눈길을 주게되면 보이는 남루한 비닐하우스 거처이다.

넓은 8차선 도로에서 막 내려서 차 한대조차 비켜다닐만한 농로에 겨우 몇m 들어서자마자 거짓말처럼 풍경이 바뀌었다. 세상에.

보자기를 펼친 마술사의 손에서처럼 느닷없이 시골의 전형적인 농촌이 눈 앞에 튀어 나왔다. 불과 몇 걸음 걷다 돌아본 큰 길이 한참 전에 떠나온 곳인 듯 갑자기 낯설었고, 머지않은 곳의 아파트 건물들도 아득해 보였다.

마중 나온 박씨의 모습도 이런 주위 풍경과 아주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작지만 단단한 체구, 햇볕에 그을은 굵은 주름, 억센 손마디에 씻어도 지지않는 손톱주위의 검은 흙은 영락없는 여느 시골농부의 모습 그대로였다. 성큼성큼 걸으며 다소 퉁명스럽게 내뱉는 말투도 그랬다.

“뭐 알아볼 게 있다고 왔소. 이왕 왔으니 절대 과장하거나 그럴 듯 하게 쓰려 말고 농민들의 어려움이나 그대로 전달해 주소.” 속내를 들킨 것 같아 뜨끔해졌다.

청명(淸明)이 지나고 이제 막 곡우(穀雨)도 넘겼다. 몇 차례 봄비에 땅도 적당히 찰져졌다. 고등학교 때 배웠던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대로라면 이제 본격적인 농사철이 시작되는 때다.

‘물고를 깊이 치고 두렁 밟아 물을 막고 / 한켠에 모판하고 논 흙을 풀어주며 / 날마다 두세 번씩 부지런히 살펴보소 / … / 무우 배추 아욱 상추 고추 가지 파 마늘을 / 색색이 분별하여 빈 땅 없이 심어놓고 / … (3월령)

그의 농막 벽에 걸린 영농달력에도 이 달의 농사 스케줄이 빼곡하게 적혀있다. ‘1일 열무 시금치 파종, 2일 쑥갓 파종, 3일 얼갈이 배추 파종, 5일 볍씨 침종 ….’

그의 논은 세곡동보다는 도심에 좀 더 가까운 율현동에 있다. 1,200평쯤 되니 이전 단위로 치면 여섯 마지기 농사다. 이제 논농사철이 시작되면 이곳을 오토바이로 아슬아슬하게 오가며 논을 갈아 모를 심고 김을 맬 참이다.

“그런데 아직 날이 충분히 따뜻해지지 않아서 모판 만들기는 이르고…. 지금은 볍씨를 불리다 내주나 되야 산토(山土)를 사다 모판을 만들 계획입니다.”

대신 요즘 그의 하루일과는 매일 새벽 너덧 시면 일어나 세곡동 농막 옆에 있는 2,000평 비닐하우스 밭 6동에 파종한 채소들을 돌보는 일이다. 겨우내 키운 비닐하우스 한 동의 부추는 곧 수확할 때가 돼 결속기(結束機)를 경기 광명의 농기 수리점에 맡겨 말끔하게 고쳐 놓았다.

“논에서는 도정쌀로 한 25가마 정도 나오고, 채소는 일년에 다섯차례 정도 수확합니다.”

_ 그럼 먹고 살만한 것 아닙니까? (이 말에 그는 기가 차다는 듯 눈을 치켜 떴다)

“이 보시오. 내가 일년 내내 뼈빠지게 일해서 쥐는 돈이 고작 1,000만원이요. 그나마 직접 농사지은 걸로 먹는 것을 해결하니 생활할 수 있지, 턱도 없는 얘기요. ‘땅패기’(땅 파는 이라는 뜻으로 농부 스스로를 자조적으로 일컫는 말)가 죽도록 농사지어 봐야 장(醬)값도 안 빠진다는 말도 모르시오?”

_ 그렇다면 다른 일을 하시지, 왜 농사를. 더구나 이 비싼 강남 땅에.

“여긴 조상 대대로 살아온 내 고향이오. 어렸을 때부터 농사를 지었지. 게다가 이젠 내 땅도 아니요. 이거 다 임차농이요. 예전 말로 하면 소작농인 거지.”

이 일대는 원래가 경기 광주군 대왕면이었다. 세곡, 자곡, 율현이니 하는 동명(洞名)은 다 대왕면의 리(里) 이름이었다. 그러던 것이 1960년대 이후 차례로 서울시로 편입됐다.

거대한 아파트단지로 바뀐 수서지구는 예전에는 버려진 땅이라고 했다. “거긴 워낙 지대가 낮아서 농사도 못 짓던 곳이었지요. 오죽하면 한강에서 메기가 하품을 해도 물에 잠긴다고 했겠소.”

그의 농막 안 장롱 위에는 예전의 마을모습이 담긴 빛바랜 사진이 고이 모셔져 있다. 사진 속에는 지금은 강남주민들의 산책코스가 된 대모산의 넉넉한 능선을 먼 배경으로 농가들과 논밭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박씨는 그 때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고 했다.

농민의 아들이니 박씨는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아버지를 도와 농사일을 익혔다. 더구나 6·25 때 형이 전사하고 스물여섯에 아버지까지 여읜 뒤에는 가장이 되어 동생들을 먹이고 가르쳐야 했다.

그러니 그는 평생을 이 곳에서 변함없이 살았으되 무심한 세월만 저 홀로 흘러 팔자에 없는 서울 강남주민이 된 셈이다. 결혼하고 아이 다섯을 낳아 키우는 동안 그나마 있던 농지는 그럭저럭 모두 남의 것이 됐다. 그저 우직하게 땅만 의지하고 사는 농사꾼에게 간혹 필요한 목돈을 마련해볼 어디 다른 구멍인들 있었으랴.

“땅만 갖고 있었으면 나도 부자지. 사실 나 뿐만 아니라 여기서 농사짓는 사람들 거의가 임차농이오. 이 일대 농지 주인 대부분이 외지 사람들이지.” 박씨의 어릴 적 고향친구들도 상당수가 그렇게 땅을 잃고 외지로 흩어졌다.

그래도 박씨는 고집스럽게 고향 흙을 지켰다. 영농지도자, 새마을지도자를 줄줄이 지냈을만큼 새 영농기술 도입과 보급에도 앞장섰다. “힘들었지만 의욕이 넘쳤어요.

전국 다수확상을 타기도 하고…. 유신정권 때는 농민의 생활향상에 뭔가 도움이 될까 해서 가톨릭농민회에 가입, 서울시 대표위원도 지냈지.

그런데 이게 반체제단체로 몰리는 바람에 정보과 형사가 따라붙고, 나 혼자면 괜찮은데 통장 등 주위 사람들까지 시달림을 받으니 도리가 없더구만. 2년 만에 그만두었어요.”

하기야 농민에게 전원생활의 낙 따위를 묻는 것은 넌센스다. 지금에야 한가한 주말농장의 주인 쯤으로 보일 수 있는 강남의 농부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어떻게든 자식들만은 절대로 농사꾼으로 키우지 않으려 애썼지요.” 아들들은 컴퓨터, 애니메이션, 조각가, 자동차 정비 등의 ‘현대적’ 직업을 갖고 있고 농사일은 아내 이이순(李二順·64)씨와 단 둘이 한다.

_ 지금은 뭐가 제일 힘듭니까.

“농번기에 일손이 없는 거지요. 간단한 일을 맡겨도 일당 4만원을 줘야 돼. 그래도 안와요. 하루종일 빈둥대는 공공근로사업도 3만3,000원을 주는데 누가 이 짓을 하겠소.”

_ 작물은 잘 팔립니까.

“내 논밭에서 나는 건 죄다 특상품이요. 가락시장에 수확 당일 내놓으니 신선도도 전국 최고고. 근데 그러면 뭐하겠소. 2,000원에 팔아넘기면 소비자는 1만원에 사 먹으니. 중간업자들만 배불리는 이게 왜 도무지 개선되지 않는지 모르겠소. 경매업체에 따라 값도 천차만별이고 ….”

한참 열을 내던 박씨가 갑자기 생각난 듯 “우리 송파농협 자랑 좀 해달라”고 분위기를 바꿨다. “농로보수, 폐비닐 수거, 배수로 작업, 농기계 수리, 무료건강진단 등까지 성심성의껏 도대체 안해 주는 게 없습니다. 이렇게 좋은 일하는 분들 널리 알려야 돼요. 강남구청하곤 달라요. ”

_ 그건 또 무슨 얘깁니까.

“아, 글쎄. 우리 논 한 켠에 모래하치장이 들어서면서 농로를 꽉 막아버렸지 뭡니까. 거긴 그린벨트니 분명 불법사업장이오. 그렇게 민원을 하고 구청장까지 만나 호소했는데 들은 척도 안합디다.”

점심을 함께 하고 헤어지면서 그가 문득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봄에 제일 먼저 피는 꽃이 뭔지 아오? … 상수리꽃이야. 그 다음에 진달래, 개나리, 목련이 차례로 피지. 그런데 보시오. 올해는 전부 다 함께 피었어. 다들 미쳤어. 세상이 온전치 않은 것이지. 나 한 2년 전부터는 아예 신문도 안 봐요.”

강남에 살아도 그는 농부임에 틀림 없었다. 자연의 미묘한 기색을 통해 세상을 정확히 읽을 줄 아는. 주변이 어떻게 변하든 어제와 같은 삶을 묵묵히 견뎌온 그들이야말로 변화 속에서 오히려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우리를 딱하게 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걸음 되돌아나오니 다시 번잡한 도시였다. 이번에는 그와 함께 있었던 농촌의 모습이 금세 꿈처럼 아득해졌다.

/이준희 편집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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