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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원의 30대를 위한 쪽지] 벅찬 '4인분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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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원의 30대를 위한 쪽지] 벅찬 '4인분의 행복'

입력
2003.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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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원 쓰는데도 망설임이...어제 밤에도 아내는 섹스를 거부했다. 딸이 둘인데 아들 하나 더 낳자는 제의를 K가 계속 거부하자 아내는 거의 한 달째 ‘노섹스 데몬스트레이션 ’에 들어간 것이다. ‘오늘 밤에는 이 불길을 아내 아닌 여자와 밖에서 풀어야지’라고 벼르며 헬스클럽 휴게실에서 잡지를 뒤적이는 K의 눈에 문 득 들어온 기사 한 구절. “1만엔을 쓰는 데 10대는 전혀 주저하지 않는다. 20대는 1분, 30대는 3분 정도, 40대가 넘으면 5분 이상 망설인다. 50대는 거의 10분 걸린다.” 일 본의 모 대학 심리학교수가 ‘지출에 따른 세대별 무의식 심리’를 번역해 실린 기사였다. K는 빙긋이 웃었다. 일본 돈 1만엔이면 약 10만원이다. 자신의 씀씀이에 있어 10만원 정도는 고려 대상 밖이었다. 그런데 지난 해 말 두 번째 딸이 생기고부터 문득문 득 씀씀이에 제동을 거는 누군가가 자기 속에 들어와 있었던 것 같다. “아들 없이도 행복할 수 있다”는 K의 말을 아내는 거의 무시했다. 그녀 는 아들 없는 고민 속에 평생을 살아온 친정 엄마를 보고 자란 탓이었다. 큰 딸이 두 돌이 지난 후에도 K가 더 이상 낳지 말자고 고집 부리자, 그 때도 아내는 섹스를 거부했다. 그런 실랑이 끝에 둘째를 낳았지만 아내의 소원대로 되지는 않았다.

*주례선생님 죄송해요

둘째 딸이 백일이 지나고부터 아내와 장모의 전화가 잦아졌지만, 이번엔K가 완강했다. 하지만 지금 K는 자신의 고집과, 10만원을 쓸 때의 세대별망설임 사이에는 아무 관련이 없을까를 생각하고 있다.

절대로 4인분의 행복에만 만족치 말라던 주례선생님의 당부를 그는 꽤 오래 기억하며 살았다. 1남1녀를 포함한 부부의 행복만이 아니라 부모나 형제, 친지의 행복까지 생각하며 살라던 주례사. 그러나 이제 공허하게만 느껴지는 주례사. 30대 직장인에게는 4인분의 행복만도 벅찬 것이 아닌가?

4인분의 행복에 대한 책임 때문만도 아니다. 아이가 둘이면 사실 직장에서돌아와 자기만의 한두 시간도 갖기 힘들다. 지출에 따른 세대별 무의식 심리가 아니더라도, 두 아이를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자기를 억제하는 존재가 자기 속에서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 기분 나쁘게 실감된다.

인구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국가가 주도하던 산아제한정책이 산아장려정책으로 바뀌는데도 대부분의 30대는 더 이상 낳기를 거부한다. 4인분의 행복이 힘겨워서가 아니라, 2인분의 행복만이라도 착실하게 가꾸자는 부부중심의 편의주의와 직장생활의 압박이 30대를 그렇게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K는 그날 저녁 화난 사람처럼 일부러 10만원을 팍 써버렸다.

/김재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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