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있다. 화투판에서 사용하는 말로, 승패에 운이7할이고 기술은 3할이라는 이야기다. 인생살이, 특히 관직도 마찬가지인것 같다. 과거 같으면 문제가 없었을 총리후보들이 높아진 공직자 윤리기준때문에 지난해 줄줄이 낙마해야 했다. 운이 없었던 셈이다. 그런가 하면운이 좋은 경우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예가 아들 병역 기피 의혹 등으로문제가 됐지만 다른 사건들 덕분에 사회의 관심이 다른 쪽으로 쏠리면서흐지부지 넘어가 버린 진대제 정통부장관이다.송광수 신임 검찰총장도 비슷한 경우다. 그는 이라크전 파병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 덕분에 국회청문회를 쉽게 넘어갔다. 그러나 검찰총장이라는 자리의 중요성을 생각할 때 송 총장 문제는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송 총장이 청문회에서 밝힌 입장들은 그가 과연 시대적 변화에 대한 국민적 열망을 안고 태어난 노무현 정부의 초대 검찰총장으로 적합한 인물인가하는 의문을 심각하게 갖게 한 때문이다. 예를 들어 송 총장은 노 대통령이 합법화와 관련자 수배해제를 검토하도록 지시한 한총련 문제에 대해 ‘한총련은 합법단체가 아니다’는 견해를 표명했다.
또 강금실 법무부장관이 폐지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준법서약제에 대해서도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단한 것이라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이 모두가 파병사태가 아니었으면 개혁적 의원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의 거센 저항과 인준반대 운동을 야기했을 문제의 발언들이다.
정말 충격적인 것은 대한민국에 양심수는 없다는 송 총장의 주장이다. 인권의 선진국이라는 미국에도 양심수가 있다는 것이 국제인권단체들의 견해인데,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이 양심수가 한 명도 없는 인권선진국이라니얼마나 가슴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일인가? 그러나 양심수가 한 명도 없다면 철장 뒤에 갇혀 있는 학생들, 노동자들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며칠 전 함세웅 신부, 박형규 목사 등 우리 사회의 양심을 대변해온 원로들과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양심수의 석방을 촉구한 것은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다.
물론 어디까지가 양심수냐는 것은 논쟁거리가 될 수 있다. 이럴 때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인권단체 국제엠네스티의 규정이 대표적인 기준으로서 효용가치가 있다. 이에 따르면 폭력을 사용하거나 주장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치적, 종교적 신념에 의해 구속ㆍ 수감된 모든 사람이 양심수이다. 따라서 한총련 관련 구속학생들부터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이르는 많은 사람들이 모두 양심수이다.
이제 유엔(UN)의 권고처럼 이 모두의 근원인 국가보안법을 폐지해, 양심수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대선 패배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시대착오적인 색깔론 시비나 벌이고 있는 한나라당의 반대 등 많은 장애가 도사리고 있다.
보수적 성향으로 알려진 송 총장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앞장서서 주장하기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의 초대 검찰총장이라면 최소한‘양심수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분단이라는 현실, 그리고 국가보안법이라는 실정법이 있는 한 어쩔 수 없는 일인 만큼 이해해주기 바란다’고 말하는 정도는 돼야지, 양심수가 없다고 시치미를 떼다니 말이 되는가? 사태가 이러하기에 노 대통령도 양심수가 없다고 생각하는지 입장을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양심수가 없다는 황당한 주장이 노무현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오해받을 수밖에 없다.
노 대통령이 송 총장을 발탁한 이유가 ‘개혁장관(강금실)_보수총장’이라는 카드를 통해 개혁과 보수간의 균형을 맞추려고 한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양심수가 한 명도 없다는 주장은 합리적 보수에도 못 미치는 기대이하의 현실인식으로 송 총장의 근본적인 인식변화가 필요하다.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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