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12일 다자(多者)대화를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침으로써 북한핵 문제에 돌파구가 열릴지 주목된다.미국도 외교채널을 통해 답하겠다고 호응하는 등 북한 외무성의 이날 언급은 지난해 10월 북한 핵 문제가 불거진 이후 가장 의미 있는 사태 진전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북미간의 본질적 시각차는 여전히 현격하다는 점, 1993~4년의 핵위기 국면이 1년7개월간 계속됐던 점 등을 감안하면 북한의 이번 태도변화는 미국과의 본격적인 기 싸움을 알리는 신호탄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북한의 후퇴인가 정부 당국자들은 한결같이 북한 외무성의 회견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 당국자는 “다자 대화를 체제 압살책으로 규정하고 미국과의 직접 담판만을 요구해온 북한이 이라크전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한발 물러섰다”고 말했다.
워싱턴 포스트도 북한 전문가를 인용, “타협의 용의를 시사하는 것이라는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평했다.
사실 북한의 변화는 이라크전이 개시되면서 어느 정도 감지됐다. 북한은1월10일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했지만, 이후 핵 재처리시설 가동 등 추가 행동을 자제해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무려 50일간 대외활동을 하지 않는 등 내부적으로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핵 개발 강행과 협상이라는 진퇴 두 갈래길 가운데 후자를 택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다자 속 양자협상 그러나 북한측의 회견에는 미국에 대한 불신과 경계심이곳곳에 드러나 있다. 북 외무성 대변인은 “(대화는) 미국이 적대시 압살정책을 포기할 정치적 의지를 갖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미국이 요구하는 대화형식을 수용하겠으니 미국 역시 선(先) 핵 포기 등전제조건을 달지 말라고 먼저 치고 나온 셈이다.
이런 견해는 그 동안 ‘다자 속 양자(兩者)’ 대화의 틀로 북미 양측을 끌어들이려는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의 노력에 부응하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중국은 여러 경로를 통해 다자대화 속에서 북미간 담판을 유도하는방안을 북한과 조율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윤영관 외교장관도 “북한이 다자대화 속에서 (북미간) 관심사를 논의할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면서 우리측 로드맵의 일단을 설명했다.
불투명한 대화전망 북미 양측이 대화의 형식에는 접점을 찾은 듯하지만,실질적인 대화 착수 및 대화를 통한 핵 문제 해결은 낙관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북한이 다자대화 수용의 전제조건으로 ‘미국의 대 조선정책의 대담한 전환’을 내건 데 대해, 미국은 북한이 최소한 핵 포기 의사를 표명해야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라크 전 개전후 미국의대북 태도에 아직 큰 변화는 감지되지 않는다.
박관용 국회의장이 최근 딕 체니 미 부통령을 만난 뒤 “미국이 지금까지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경한 자세라는 것을 느꼈다”고 토로한 것도이런 맥락인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아직 북한을 수용할 다자대화의 틀조차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5월14일 한미 정상회담 이전에 어떻게 든 대화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생각이다.
이동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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