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마이크로소프트(MS)의 차세대 게임기 X박스의 번들 포함 제품이 소리 소문 없이 출시됐다. 번들 소프트웨어는 일본 세가사의 대작 ‘젯셋 라디오 퓨처’와 ‘세가 그랜드 투어’의 합본으로, 국내의 세가 마니아들이 정식 발매를 손꼽아 기다리던 타이틀이었다.보통 번들이란 출시된 지 한참이 지나 가치가 떨어진 제품을 무료로 끼워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X박스의 국내 유통사인 세중게임박스와 MS는국내에 발매되지 않은 대작 타이틀을 번들로 출시했을 뿐 아니라 타이틀만을 별도로 발매하지도 않았다. 정식 발매된 X박스를 이미 구입한 사람들은해당 게임을 사려면 X박스를 1대 더 사거나 일제 밀수품을 구입해야 할 판이다.
2년 전만 해도 게이머, 특히 콘솔 게임을 즐기는 이들은 불만이 있어도 호소할 데가 없었다. 게임기나 타이틀이 정식으로 수입되지 않아 전자상가에서 일제 밀수품을 사서 즐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일부X박스 이용자들은 “소비자로서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겠다”며 안티사이트를 개설하고 1인 시위를 벌이는 등 적극적 행동에 나섰다.
“저희는 X박스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안티세중MS’(antisejung.ez.ro)라는 사이트의 운영자인 정용환(28)씨와 정종국(35)씨는 이모임이 안티 ‘X박스’가 아닌 안티 ‘세중MS’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들은 “X박스를 사랑하기 때문에 지난해 말 국내 출시를 기다려 정식으로 구매했지만, 아직 소비자로서의 정당한 권리를 인정 받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X박스가 여태까지 나온 게임기 중 성능이 가장 우수한데도 국내 판매고가 극히 부진한 것은 대작 타이틀 부족과 높은 가격, 불합리한 유통정책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MS와 세중 측은 “하드웨어가 많이 팔려야 소프트웨어도 많이 출시하고 한글화도 할 수 있다”며 게이머들에게인내를 요구하고 있다.
실제로 세중과 MS코리아 측은 게이머들의 불만 사항을 적극적으로 반영해개선하지 못하는 이유로 ‘MS본사의 방침’을 들고 있다. 이에 대해 정용환씨는 “판매자가 이미 구매한 사람에게 ‘판매 실적 저조’를 이유로 참아달라고 말하는 것은 무리”라고 주장했다.
한글화 타이틀이 극히 적은 것도 불만이다. 현재까지 국내 X박스 타이틀중 한글화가 된 것은 ‘헤일로’, ‘메탈 던전’, ‘해리포터’, ‘반지의제왕’ 등 4개에 불과하다. 30여개의 타이틀 대부분이 영문으로 나왔다.
지난해 PS2용으로 나온 ‘영 제로’는 한글화해 3만5,000원에 출시됐지만, X박스용으로 뒤늦게 출시된 ‘페이탈 프레임’은 제목만 다르지 똑같은제품이고 영문판인데도 5만2,000원이나 한다.
정종국씨는 “자막 없이 영화가 개봉되거나 DVD가 출시되는 일은 없으나게임은 아무리 줄거리가 중요하고 메뉴가 복잡해도 한글화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이는 성능의 50%만 발휘하는 제품을 내놓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X박스 유통사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애프터서비스(AS) 센터가 국내에 없어 X박스를 수리하려면 일본에 가져가야 하고,정식 구매한 사람에게서 중고로 구입하거나 양도받은 사람은 AS를 받을 자격조차 없다. 소프트웨어 가격이 5만2,000원으로, 보통 3만~4만5,000원 사이인 PC용이나 X박스용 게임에 비해 너무 비싸고 밀수품과 큰 차이가 나지않는 것도 억울한 부분이다.
두 정씨는 “MS코리아와 세중측이 이제라도 소비자의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며, “하루빨리 소프트웨어 가격을 낮추고 한글화한 대작 타이틀을 줄줄이 출시해 PS2 못지 않은 X박스 붐을 일으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진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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