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요르단에서 이라크 국경을 넘어 바그다드로 진입한 600여㎞, 12시간에 걸친 여정은 기자의 인생에서 가장 긴 시간이었다.전날 밤 암만을 출발, 이날 새벽 이라크 영토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한시도긴장을 풀 수 없었다. 인적 없는 사막에서조차 혹 총알이나 포탄이 날아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은 달리는 차 안에서도 전신을 뻣뻣하게 만들었다.
폭격으로 직경 10㎙의 거대한 구멍이 뚫린 고속도로 옆에 새까맣게 타버린민간인 차량과 파괴된 이라크군 탱크들. 폭격을 받아 폐허로 변한 마을들. 그 안에서 몸부림치다 죽어갔을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환청처럼 끊임없이기자를 괴롭혔다.
약탈자들의 습격 가능성에 바짝 긴장하며 들른 주유소에서는 남루한 차림의 이라크인이 밤을 새워 휘발유를 팔고 있었다. 가격은 리터당 20 이라크디나르. 우리 돈으로 13원 정도이다.
그 이라크인은 미국의 전쟁 목적으로 여겨지고 있는 석유를 팔면서도 결코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바그다드 외곽에서 만난 한 미군은 폐허가 된 마을을 가리키며 “민병대가민가 사이에서 조준사격을 해 어쩔 수 없이 민가를 폭격했다”고 담담하게말했다.
한 성난 이라크인은 “집 밖에 성조기를 걸어두었는데도 간밤에 미군이집을 약탈했다”고 울부짖었다.
현재 이라크 내에서는 전 세계에서 특파돼온 수많은 기자들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취재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적이 아니란 의미에서 ‘TV’라고 크게 써 붙인 기자의 차량을 향해 분노의 침을 내뱉던 중년 이라크 남자와 눈이 마주쳤을 땐 “과연 내가저들의 분노에 앞에 떳떳할 수 있을까’ 하는 자괴감이 밀려 왔다.
김용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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