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에 만났던 어느 양반, 요즘 제일 듣기 싫은 말이 ‘콘텐츠’라고 했다. 김종삼의 시 ‘북치는 소년’에 나오는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가난한 아희에게 온 서양나라의 크리스마스 카드처럼’ 성공적일 수 없는, 이런 유행어에는 공통점이 있다.첫째 외래어로 되어 있다는 것. 외국어일 수도 있지만 가공되고 전성되어 원어민도 모르는 단어로 변한다. 벤치마크, 패러다임, 펀더멘탈, 재테크 같은 단어들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어떤 시대에 대응해 출현했다가 시대가 변하면, 시대의 ‘패러다임’과 ‘펀터멘탈’이 변하면, 급속하게 힘이 빠져 때묻은 말이 돼 버린다는 것이다. 유행어니까 당연하다.
첨단 유행어를 적극적으로 쓰는 족속은 이런 유행어를 쓰지 못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노인과 취학 전 아동과 은둔자, 기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우월감을 갖고 있고 굳이 감추려 들지도 않는다. 얼마 전 무슨 칼럼에서 요즘 유행하는 단어로 이루어진 문장을 하나 보았다. “우리의 문화 ‘마인드’가 이처럼 형편없으므로 문화의 ‘인프라’가 제대로 만들어질 수 없고 ‘콘텐츠’가 채워지지 않아 정체불명의 ‘퓨전’ 문화가 횡행하고 있는 것이다.” 읽다 보니 문화 ‘코드’가 맞지 않아서 그런지 어지럼증이 났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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