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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영·호남만의 나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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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영·호남만의 나라인가

입력
2003.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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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TK(대구ㆍ경북)편중 인사가 국민의 지탄을 받던 시절 총선 민심을취재하러 대구에 간 적이 있다. 내가 만났던 사람들은 TK란 말 자체에 거부반응을 보였다.편중인사로 덕 보는 사람은 극히 일부인데 온 경북 사람들이 실속 없이 TK라는 비난을 듣는다는 것이다.

“TK의 핵심은 경북고 인맥이다. 도청 시청 등지방공무원 인사에서도 경북고 인맥에 밀려 다른 고교 출신들이 물먹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출세하는 일부를 제외하곤 대구 경북 사람 모두가 피해자다”라고 한 도청공무원은 말했다. 요즘 그의 말이 다시 생각난다.

정권이 바뀌면서 TK에서 PK(부산ㆍ경남)로, 다시 MK(목포ㆍ광주)로 편중인사가 이어졌다. 편중인사를 격렬하게 비난하던 사람들이 정권을 잡은 후엔예외 없이 고향 사람들로 인의 장막을 쳤다.

김대중 정부는 ‘불균형 시정’이라는 논리를 폈다. 30여 년에 걸친 경상도 정권아래 전라도 푸대접이 극심했으므로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김영삼 정부말기 영남 42.6%, 호남 14.5%이던 1급 이상 공직자 출신지비율은 김대중 정부 출범직후 영남 33.5%, 호남 22.8%로 변화했다. 그러나 편중인사가 계속되자 비난의 표적이 됐다. 김대중 정권 최대의 실책이 편중인사로 꼽힐 정도다.

요즘 제기되는 ‘호남 역차별론’은 편중인사의 후유증이다. 전 정부는 불균형 시정이라는 논리로 호남출신을 배려했지만, 지금은 그 동안의 편중인사를 바로잡는다는 명분아래 호남출신이기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나올 수 있다.

호남의 유권자들은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몰표를 던졌다. 민주당의 대선후보 경선에서 노 후보에게 결정적인 승리의 전기를 만들어 준 곳도 호남이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호남의 도움을 못 잊어 전 정부의 호남 편중인사를 물려받는다면 국민이 용납할까.

한 호남출신 국회의원은 “죽 쒀서 개 줬다”는 험악한 말로 호남의 민심을 대변했다. 노무현 정부는 민심을 달래기 위해 주요 인사들을 잇달아 호남에 파견했다.

정찬용 대통령 인사보좌관, 문재인 민정수석, 김두관 행자부 장관, 조영동국정홍보처장 등이 잇달아 호남 민심수렴에 나섰다.

광주에 다녀 온 정찬용 보좌관은 “바닥 민심은 그렇지않은데 기득권층이호남소외 불만을 조장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현지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광주지역 언론사 간부들은 조 홍보처장과의 오찬 간담회를 거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호남의 민심이 5.6공 시절 대구의 민심과 크게 다르지 않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정찬용 보좌관의 말을 믿고 싶다.

역대 정권이 TK, PK, MK 편중인사를 했지만 실제로 덕 본 것은 출세한 일부이고, 나머지는 실속 없이 욕만 먹었을 것이 틀림없다. 고향사람이 출세하면 연줄연줄로 덕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어려운 얘기다. 옛날엔 가능했을지 몰라도 이제는 힘들다.

노무현 정부의 1급 이상 공직자 234명의 출신지역 비율(문화일보 조사)은영남 39.7%, 호남 26.5%, 서울ㆍ경기 16.2%, 충청 12.8%, 강원 3%로 나와있다.

소위 권력 기관인 청와대 검찰 경찰 국세청을 따로 보면 영남 41.3%, 호남 22.6%, 서울ㆍ 경기 17.3%, 충청 13.3% 등으로 영남편중이 두드러진다.

인구비율(2000년 거주지별)은 영남 27.9%, 호남 11.4%로 두 지역 모두 공직자 비율이 인구 비율을 크게 뛰어 넘는다. 노무현 정부의 영남 편중인사를 비난할 수는 있지만, 호남 역차별 주장은 무리다.

노무현 정부는 호남 역차별론에 신경 쓰기 보다 영남출신 기용이 상식 선을 넘었다는 점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인사에서 출신지 비율을 따져야 하는 한국의 현실이 안타깝다. 고향 때문에 능력 있는 사람이 탈락하고 능력 미달인 사람이 중용된다면 나라가 잘될 리 없다.

영남도 호남도 편중인사에 대한 책임이 있는 만큼 편중인사를 없애는데 앞장 설 의무가 있다. 이 나라는 영호남만의 나라가 아니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영호남에서 편중인사 시비가 일어난다면 다른 지역 사람들 기분이 어떻겠는가.

본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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