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5년 4월14일 밤 10시께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이 워싱턴의 포드 극장에서 연극을 관람하던 중 머리에 총탄을 맞았다.대통령은 그 이튿날 아침 7시22분에 사망했다. 56세였다. 남군 사령관 로버트 리가 애퍼매턱스에서 항복함으로써 4년에 걸친 내전이 끝난 것은 그보다 불과 닷새 전이었다. 종전의 환희로 가득찬 수도 한 복판에서 대통령이 암살 당한 것이다.
남북 전쟁 기간 중 남군이 링컨을 납치할 계획을 세웠다는 소문이 떠돌기는 했으나, 북군의 승리로 이 소문은 의미 없는 것이 되었다. 그러나 링컨에 대한 패배자들의 증오는 잦아든 것이 아니라 살해 음모로 나타났다. 링컨도 자신을 노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피격 당일만 해도 링컨의 집무실 책상에는 그를 살해하겠다는 협박 편지 여든 통이 놓여 있었다. 링컨이 몰랐던 것은, 존 윌키스 부스라는 이름의 남부 출신 배우가 전쟁 중 두 차례나 자신의 납치를 꾀한 바 있고, 전쟁이 끝나자 이제 대통령을 살해함으로써 남부의 패배를 설욕하겠다고 마음 먹었다는 사실이었다.
링컨을 저격한 부스는 관객을 향해 라틴어로 “식 셈페르 튀란니스(Sic semper tyrannis: 폭군들은 늘 이렇게 되는 거야)”라고 외친 뒤 달아났다. 그는 4월26일 버지니아주 볼링그린 근처의 한 창고에서 경찰과 대치하다 사살되었다.
부스가 수사관들의 신문을 받기 전에 사살되는 바람에, 링컨의 암살을 둘러싼 의혹은 그 뒤 오랫동안 호사가들의 수다 재료가 되었다.
남부에 대한 링컨의 유화 정책에 불만을 품은 정부 안의 세력이 이 암살 계획을 알고 있으면서도 팔짱을 끼고 있었다는 주장도 제시되었다. 그 점에서 링컨은 그로부터 98년 뒤에 살해된 존 케네디의 진정한 선임자였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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